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기버 Jun 22. 2021

운동화 한 켤레, 이게 뭐라고


얼마 전부터 양말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하나도 아니고 거의 신는 것마다.


양말이 신은 지 좀 돼서 헐었나 보다 생각하고 새로운 양말을 구입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새 양말을 신은 그날에도 구멍이 나는 게 아닌가.


불량도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다 싶어서 운동화 안으로 손을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생각도 못 했던 구멍(꺼진 부분)을 발견했다. 겉이 멀쩡한 운동화인데 엄지 쪽이 푹 꺼져 있는 것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열심히 신고 다닌 내가 참 무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그 신발을 다시 신을 수도 없고...


오래된 다른 신발을 꺼냈다. 나이키 에어. 몇 년도 버전인지. 천 소재로 만든 거라 약간의 구멍이 될 듯한. 헤진 부분이 있었지만 색도 예뻐서 넣어두었던 신발이다.


그런데 이 신발마저 며칠 신고 다니니 구멍이 커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주말에 자신의 귀한 용돈으로 신발을 사주겠다고 했다. 


남편이 늘 운동화를 사주기는 했다. 그런데 내 기준에서는 비싼 나이키 운동화였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남편이 예쁜 신발 사진을 보여주자 마지못해 색을 고르고 고맙다고 했다.


가격을 보고선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만 남편이 사준다고 하니 좋았다. 주머니 사정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도착한 운동화.

정말. 예뻤다.

신으면 신을수록 예뻤다.


주말 산책을 나가는데 남편이 내 뒷모습을 한참을 보았다.

그리곤 자신이 새 신발을 산 것도 아닌데 흐뭇해했다.


너무 좋다고. 예쁘다고.


그러면서 남편이 말했다.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마누라 운동화 하나 못 사주고 이제야 사주는지..."


남편은 예쁜 운동화를 신고 기분 좋게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나 보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예쁜 운동화 남편에게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선뜻 사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꼭 무슨 날의 핑계가 있어야만 겨우 가능한 일이라는 게 참 슬프기도 하고 스스로 안쓰럽기도 하고.


그저 아끼고 사는 것도 좋지만. 한 번은. 살면서 좀 넉넉하게 지내보고 싶은 마음.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좋은 거, 예쁜 거 사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언제쯤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오늘, 까치에게 배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