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편지] #10
몇 일 전 겨울 옷을 몇 벌 샀습니다. 패딩 점퍼 하나 사려고 들렸다가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옷들을 많이 샀어요. '흑~' 용돈이 뚝 떨어졌습니다. 입어보면 왜 그렇게 사고 싶은지요? 또 세일 마지막 날이라는 말엔 왜 그리 '혹~' 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웠어요.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고선 새 옷 입기가 도통 어렵습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낼 땐 입던 옷에만 손이 가네요. 더하여 삼겹살과 같은 고기 약속이나 회식을 하는 날엔 빨아야 될 옷을 입고 갑니다. 새 옷에 고기 냄새 베일까 입지 않죠.
옷장 정리를 하다 보니 사놓고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버려야 될 게 있습니다. 어느덧 민망해진 디자인이 됐어요. 어디 옷만 그런가요? 신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오거나 눈오면 항상 헌걸 신고 나가요. 자동차 역시 구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날씨가 궂으면 지하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새 옷, 새 차, 새 신발, 새 노트북 등 새로운 걸 쓸 때면 뭐가 그리 아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애지중지 입기 보다 뽑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하는 게 남는 건데 말이죠. 새롭고 특별한 날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문득 일상을 보내는 마음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헌 옷을 입으면 편하지만 설레지 않아요. 날마다 반복하는 생활이 이와 같더라구요. 하던 대로 적당하게 보냅니다.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놀고 적당하게 만나고 적당하게 배우고, 남들 하는 만큼 그저 '적당하게' 살아요. '일상'에선 적당함을 입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관람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땐 일탈스러워요. 들뜨고 두근거립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지금 맘껏 누리자’ 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경험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할 '때'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상을 매번 새롭게 살아낸다는 건 어려운 일 같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약속이 있든 없든 오늘을 보내는 마음을 조금만 각별히 한다면 새 옷 입기의 어려움,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옷장 속의 그 옷, 결국 버렸어요. 한 번 밖에 못입었는데, 아끼다 '똥' 됐습니다.
.
.
.
from, 왕마담 드림
.
P.S : 한 번 혹은 두어 번 입고 버린 옷들이 지금까지 몇 벌이나 되더라구요. 라운드 티부터 정장까지 다양합니다. 큰 마음 먹고 샀던 코트도 있어요. 지금 보니 후져보였습니다. 별다른 약속이 없을 땐 입기를 아까워하다가, 버리긴 더 아까웠어요. 헌 옷은 막 입기에 참 편합니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마찬가지였어요. 뭐든지 적당하게 합니다. 새로운 뭔가를 할 땐 작은 일이라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 하지 뭐' 혹은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겠지' 흘려 보냅니다. 아끼다 '똥'된 옷처럼, 무의미한 일상이 얼마나 많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