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편지] #12
23:05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한 밤 중에 사이렌마냥 어서 받으라 재촉하더군요.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엔 술냄새가 풍겼어요. 2주 전 출장갔던 무안에서 만난 다른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업무 전화라 기분이 먼저 상했어요. 이 날 당사 제품이 포함된 작업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닌 협력 업체 직원이 갔어요. 당사 제품에 대해 고객의 계획되지 않은 요청 사항이 생겼습니다. 현장 대응이 원활하지 않아 마무리되지 않았죠. 해당 사항을 협력 업체 직원 분은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현장에서 빠졌습니다.
다짜고짜 밤까지 계속 기다렸는데, 왜 설명해주지 않느냐고 따지더군요. 이미 설명된 것으로 알고 있기에 어이가 없어 잠이 다 깼습니다. 짜증났어요. 언성 높은 몇 마디가 오고 갔습니다. 본인이 공식적인 프로젝트 매니저도 아닌데, 자꾸 행세하려 드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몇 일 전에도 통화하면서 그런 태도를 보이길래 몇 마디 쏘아주었습니다. ‘지금 저한테 따지시는 건가요?’, ‘제가 왜 공식 PM도 아닌 당신한테 일일이 보고 해야 되는 겁니까?’ 라고 했죠. 상대방이 몇 일 전 그 얘기를 꺼냅니다. 못내 잊혀지지 않은 듯 보였어요.
제가 했던 일보다 사용했던 말 몇 마디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 같았어요. 그 프로젝트는 급하게 진행됐습니다. 또한 여러 업체가 일했지만, 환경이 맞물려 돌아가지 않았어요. 프로젝트 매니저로 나선 분이 일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아 믿음이 없었습니다. 깔보는 마음마저 생겼어요.
작업 전 그들의 요청 사항도 검토했지만 자세하게 살피지 않고 대충했습니다. 요구 사항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않았죠. 같은 회사 동료가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세를 낮추기 쉽지 않았지만 먼저 사과했어요. 미흡했던 일처리에 미안하다고.
또한 프로젝트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점에 대한 사과였어요. 상대방도 마음이 좀 풀렸던지, 밤중에 이런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일을 제대로 하려 하기보다, 제대로 진행되는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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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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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일을 맡게 될 때 가끔 짜증부터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프로젝트일 경우이고, 십중팔구 그렇게 될 공산이 클 때지요. 반면 원활하게 진행되던가, 함께 일을 해봐서 어떻게 해야 될 지 파악될 경우 무던하게 맡습니다. 제대로 성과를 내려고 하기 보단, 영글어가는 일에 무임승차하려는 마음이 큰거죠. 한 밤 중 걸려왔던 클레임 전화는 그런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보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