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이상합니다. 낮 최고 기온이 20도를 넘었고, 부산 어딘가는 벚꽃이 피었다는 기사가 났네요.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상 기온으로 인한 현상이라 생각하니 살짝 불안감이 듭니다.
종강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미리미리 해야 하는데 연말 목까지 차서야 하게 되네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나’를 가장 뒤로 미루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사랑해야 하는 '나의 몸'을 말이지요.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혈압이 다소 높다고 합니다. 하루에 기본 2~3잔씩 들이키는 커피와 이른 새벽 일어나는 루틴으로 인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커피를 먹지 말라고 경고하네요. 그런데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뇌가 각성되지 않습니다. 마치 금단현상처럼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멍합니다. 중독자처럼 커피향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고로 병원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마 4~5살로 기억합니다. 시골은 미장원이 없어서 여자아이도 동네 이발소에 가야했습니다. 그런데 이발사 아저씨를 보고 제가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고 하더군요.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에 의하면 어떤 상황에서 강화된 행동이 유사한 다른 상황들에서 일어나는 것을 자극일반화(stimulus generalization)라고 합니다. 즉 주어진 자극에서 발휘된 통제는 다른 유사한 자극들에서 공유됩니다. 이는 두 상황을 변별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발사 아저씨의 하얀 가운을 의사 가운으로 착각하고 일반화 한 것이지요. 아마도 병원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았나봅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병원을 잘 가지 않습니다. 나이들 수록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파도 참는 습관이 생겼네요. 어쨌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올해 가장 큰 숙제를 마쳤습니다.
큰 아이는 대학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1박 2일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전 막간을 이용한 휴식이랍니다. 같이 입학한 친구들은 현재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 예술대학에 다시 입학한 친구, 타 대학에 편입한 친구, 그리고 내년 2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친구까지. 나름대로 자극을 받고 온 듯 합니다. 돌아와서 다시 공부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시험을 앞두고 감정기복이 좀 심합니다. 수시 지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기로에 선 마지막 시험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지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라고. 여자 아이들의 묘한 감정기류가 때로는 따뜻한 봄 햇살 같다가도 어느 날은 한 겨울 냉기가 흐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랭전선이 흐르는 날이네요. 그 와중에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엄마도 사람인지라 가슴 밑바닥에서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는데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주고, 다스리기 위해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전수 받은 김치만두는 우리 아이들의 최애 간식입니다. 음식을 잘하는 편은 결코 아닌데, 엄마표 만두를 맛있게 먹어줍니다. 무려 160여개의 김치왕만두를 만들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보람은 있네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내일부터 작은 아이는 기말고사 시험을 보고, 저는 종강을 합니다. 성적 입력을 완료하면 이번 학기도 끝이 납니다. 그러면 또 임용기간이어서 서류를 내고 임용여부를 기다려야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과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마냥 고인물로 사는 것보다 이런 긴장이 나름 삶에 활력이 된다고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논문도, 글도 열심히 쓰고 있는 이 순간이 저에게 또 다른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로는 최고라고 할까요?
비가 조금씩 내립니다. 이번 주는 과연 어떤 날들이 될까요? 벚꽃이 피는 봄 햇살, 이 역시도 제철을 모르는 이른 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네요.
아이들도 다 때가 있는 법이겠지요? 빠르게 어른이 되어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억압하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쏟아내는 것이 치유적 측면에서 보면 더 나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