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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18. 2022

마지막 부동산 쇼핑

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이야기

나는 임차인이다. 세입자다.

서울 사는 집 없는 40대 가장이며, 얼마 전 집주인에게 퇴거 통보를 받은 임차인이다.


퇴거 통보를 받은 지 1주일가량이 흘렀다. 사치였다. 이렇게 그냥 끓어오르는 분통을 곱씹고 있기에는.

원인 분석, 재발방지, 이유 확인, 그런 건 필요 없었다. 한시가 급했기 때문이다. 이 고통을 야들야들 연양갱처럼 씹고 뜯고 즐기고 있다가는 추운 겨울에 온 가족이 거리로 내앉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 즉시 이 집에서 쫓아내어지는 상황은 브라질 올림픽 김연경 선수처럼 완벽하게 블럭킹 하기는 했지만,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지금 이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 명제가 되어버렸다.


서러웠다. 하지만 쌉싸름하고 매콤했던 퇴거 명령은 정신이 번쩍 들기에 충분했다.   




살 집을 바쁘게 찾아봐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는 이사 갈 '동네'를 알아봐야 한다.


날씨는 점점 더 더워져 갔지만 머릿속은 멍해져 갔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어쩔 수 없이 원칙으로 돌아갔다. 교육, 교통, 자연, 상권. 부동산 입지 선택의 4요소라고 나름 Trust 해 왔던 '빠숑'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직주근접? 투자 가치?


"야 인마, 애들 학교 들어가면 끝이야 끝"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면 집은 대충 정해질 걸? 그땐 이사 가기 힘들어."


선배가 했던 말도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사단이 나기 직전에 투자했던 ㅇㅇ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그동안 축적해온 온갖 부동산 투자 노하우를 다 모아서 자신 있게 투자한 아파트였던 만큼 수익률 측면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괜찮았고 노후를 준비하기에도 괜찮은 입지의 그곳이다. 안타깝게 매도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쑥쑥 가치가 올라가고 있었던 만큼, 한번 더 세입자 살이를 견디면서 투자를 강행해 볼까도 싶다. 하지만 더더욱 쑥쑥 자라는 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쑥쑥 커가고 있는 이상 '교육'을 이길 수는 요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결혼을  뒤에는 서울 시내 동서남북에서  살아봤다. 송파구, 마포구, 영등포구, 성동구, 양천구까지. 방방곡곡 서울 시내를 여행하듯 이사를 다녀봤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서울 양천구 목동에 안착을 했다. 투자와 전세 거주를 병행하는 모험을 하면서, 이곳에서 ‘최장 기간 거주 하게 되었다. 다음 행선지로서 토끼 같은 아이들 없이  둘이 살고 있다면 다시 강을 건너 북쪽으로 도하할 수도 있었지만, 토끼를 사육하기에는 여기 목동만 한 곳은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목동, 여기다


아이러니하게 부동산 투자를 멈추기로 마음을 먹었던 동네이기도 하고, 마지막 부동산 쇼핑을 해야 하는 곳이 여기가 되어버렸다.


동네를 결정하니 많은 것들이 수월하다. 유튜브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는 투자 가치로서의 부동산 개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앞으로 가격이 오르는 곳에 투자하세요’ 같은 슬로건은 다 ‘bullshit’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오로지 아이들 안전하게 학교를 보내고, 깨끗한 집에서 안전하게 살면 되는 것이 이번 '쇼핑' 1 순위 조건이 되어버렸다.



처음으로 내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나아가서,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는 상상을 했다.


물론, 인테리어가 필요 없는 깨끗한 신축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터이고,  얼마나 모두의 로망 comes true가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목동은 그런 곳이 별로 없다. 동네의 7할을 차지하는 아파트님들은 1987년경에 지어진 ‘88 올림픽 전시용아파트로서 탄생한 친구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인해 ‘권장 소비자 가격’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나머지 3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3할의 아파트들 또한 비슷한 나이에서 형/동생 불러도 문제없는 연식이라 큰 모험이다. 그럼에도, 겉바속촉, 다소 낡은 아파트라 해도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 될 것 같았다.


목동의 30년 묵은 단지에서 매일 밤 벌어지는 풍경


어쨌거나, 겉바속촉. 지금의 쇼핑이 끝나면 ‘Brand New’ 최신식 신 물건의 짜릿함 보다는, ‘Fully Customized’ 상품묘미를 느끼고 있게 된다.  괜찮은 쇼핑이  거라는 생각으로 자위를 하고, 1주일  집주인으로부터 퇴거 명령서를 전달받은 세입자는 아닌   잡으며 억지로, 강제로 행복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현실.

당장 집을 나서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 문을 두드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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