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이야기
어쩌다 보니 쇼핑 타임이 되었다.
품목은 부동산이다. 마지막 부동산 쇼핑의 시간이다.
그동안 나름의 철학을 갖고서, “채무 없이 구매하지 못한 내 집은 cash flow의 레드카드 역할을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전셋집에서 추방이 된 이상, 그런 철학 따위는 이제 없다. 한 순간에 다 바뀌어버렸다.
지금 이번 쇼핑의 목표는 '매매', 오로지 '매매' 뿐이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하다.
이론적 접근을 한다.
존경하는 '빠숑' 소장님의 기준을 소환해야 한다. '교/교/상/자', 즉, 교통, 교육, 상권, 자연. 다 따져서 선택해야 하나, 사실 지금 내 상태는 선택이 불가하다. 다 필요 없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지 분석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대한민국 서울시 양천구 목동. 아이들은 계속 학교를 다녀야만 한다는 명제는 부동산 입지 분석의 원칙스러운 기준을 모두 무찌를 수 있을 만큼 막강했다. 유윈, 올킬. 현재 위치 근방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결 수월하다. 탐색 반경이 좁혀졌다.
공교롭게도 서울시 양천구의 지도 경계선 모양은 한 마리의 슈나우저 모양과 흡사하다. 의도적인 작품 일 걸까?
계약이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나버릴 지금 이 전셋집. 속된 말로 '목동 뒷 단지'라고도 불리는 동네다.
이 집의 나이는 상당하다. 내 나이랑 별반 크게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35 years old. 나도 늙었고, 그도 늙었다. 사실, 내가 더 늙었다 -.-;
어쨌든 이 친구는 구축 아파트다. 88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건축된 엄청난 규모의 타운이다. 대단히 대규모의 단지다. 직접 함께 붙어 있는 2개 단지 규모만으로도 4천 세대가 넘고, 동일 생활 반경의 7개 단지 합산만으로도 9,600세대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니 신도시급 타운이다.
거대함은 세대수를 넘어 커뮤니티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오랜 시간 대규모의 사람들이 부족을 형성하고 살아온 마을에서는 역사가 살아 숨 쉬지 않던가. 이곳 또한 그동안 축적된 인프라는 거대하다. 음식, 학원, 생활 용품점 등 카테고리별로 없는 것이 없다. 수요가 없는 부류의 인프라는 이미 단지 선배들의 철퇴를 맞았다. 자연스럽게 퇴장하고 정화되었다. 적절한 동선, 적절한 위치에는 꼭 필요한 상권과 시설이 위치해있다.
단지의 조경도 훌륭하다. 여러 가지 최적화된 시설관리 노하우도 상당하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서 살기 때문에, 낡은 아파트임은 분명했지만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안정감은 비교하기 어려웠다.
워낙 매력적인 단지가 분명해서, 지나친 이동은 해도 최소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은 단지 내에서 눌러앉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아, 인생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친구는 양손 가득히 '재건축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마음먹고 선택하려고 해도 감히 범접할 수가 없다. 제법 괜찮은 입지, 거대한 인프라를 갖춘 대규모 평지의 서울 시내에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그렇기 때문에 이 집의 가격은 범접할 수도, 꿈꿀 수도, 은행의 힘을 빌려도 원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약 올리는 건가. 심지어 우리 단지 사잇길은 서울시가 2019년에 선정한 예쁜 단풍길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멋진 곳이다. 하지만 도전을 하기에는 그의 양손에는 너무나 거대한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닌 '도전하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범접하기 어려운 가격의 단지인 것은 맞기도 했지만 충분히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동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딱 2가지 조건에 대한 깔끔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1
Q) 지금 이 단지를 매매한다?
A) 방을 4개에서 2개로 줄여야 한다.
#2
Q) 재건축을 바라본다?
A) 그때 되면 내 나이 환갑. 말 드릅게 안 듣는 자식 놈들만 좋을 일이 될 것 같다. 아직은 다 함께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그가 가진 양손의 초 강력 재건축 카드는 포켓몬 빵만큼 강력한 것이었지만, 그 희미한 황금덩어리가 언제쯤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이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냉장고에 반찬도 충분한데 재건축 카드를 자린고비처럼 모시고 지낼 자신이 없었다.
핑계는 찾다 보면 한 없이 생기는 법.
"그래, 주차도 힘든데, 지하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가자"
싱겁지만 나름의 강력한 논리로,
깔끔하게 1만 4천 세대가 살고 있는 대단지를 포기했다.
삶의 질이 우선!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로 했다. 다소 주관적인 기준일 수도 있지만 hardware로서의 집, home이 아닌 house 측면에서 바라볼 때, 삶의 질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 되고 있었다.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도 현명한 방법이겠지만, 내 집에서 삶의 질을 찾고 현재에 충실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며 모험이기도 했다. 머릿속이 흐려지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 퇴거 명령 충격을 딛고, 1.5년 뒤에는 새로운 '내 집'에서 살고 있는 모습만 생각하는 것이 더 즐겁울 것 같았다.
그렇게 내린 결론
1. 대단지 포기. 소형 단지 아파트로 간다. 3-4개 동만 있는 곳
2. 또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시설은 훌륭한 주상복합 또는 오피스텔 큰 평수로 간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고민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시점이었다. 점점 더 답에 가까워지는 시점이 기기도 했으나, 반대로 와이프와의 의견 충돌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