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이야기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2020년 7월 10일. 휴대폰에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드르르륵, 윙~'
진동이 울렸다. 날이 더워서 졌을까, 아니면 더위를 이겨내고 휘두른 손목의 때문이었을까. 휴대폰의 진동은 그날따라 더 강력한 흔들림으로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집주인입니다"
"죄송하지만 6개월 내에 집을 비워 주셔야 하겠습니다."
"정부 정책 때문에 그 집에 들어가서 2년 이상 살아야 한답니다."
"미안합니다. 빠르게 결정해서 이사 부탁드립니다."
휘청했다.
문자 메세지를 받기 하루 전날은, 최고 기온이 33℃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은 금요일이었고 날씨도 조금은 누그러졌던 기억이 난다. 그랬기에 회사 외부에서 점심을 먹었고,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숍 앞에서 농담하고 있었던 순간, 농담처럼 다리에 힘이 풀어져버렸다. 주변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임대인의 문자 메세지는 동네 문방구에서 팔 것 같은 주황색 소음 차단 솜이 되어 내 귓구멍을 막아버렸고, 순간적으로 정적이 흐르며 주변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 오질 않았다.
모든 것이 멈춘 느낌이었다.
'내년 1월까지 집을 비워?'
'아이들 학교는? 유치원은?'
'어디로 이사가?'
'투자해 놨던 ㅇㅇ구 21평 집으로 가야하나?? ‘
‘집 크기를 절반이냐 줄여야하나?’
내 집 없는 전세 인생.
사실, 나는 방금전 '퇴거 통보'를 받은 임차인 신세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임대인이기도 했다. 결혼 후 조금씩 투자를 하면서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몇 번 내봤던 경험은 있었지만, 사실 단 한 번도 '자가(自家) 인생'은 겪어보지를 못한 인생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부동산 투자 고수 들은 절대로 자기 집에 살지 않습니다.'
라고.
하지만 오늘 만큼은 처음으로 세입자의 설움이 해운대 앞바다 파도처럼 밀려와 심장을 쑤셔댔다.
'6개월 내에 나가 달라고?'
'계약기간 1년을 남기고 나가 달라고?'
화가 났다. 발악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물러나서 다른 동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세 들어 살고 있는 서울 목동을 떠나게 된다면 출퇴근 직주근접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멱살을 잡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동네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 목동을 떠난다는 것은 목동으로 이사 온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무엇보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전세 대란이었다. 다른 전세 집을 새롭게 구하기에는 온 나라가 떠들썩한 시기였다. 발악을 해야 했지만, 솔직히 사면초가였다.
"아, 그러셨군요"
"저도 선생님의 임차인지만 다른 재건축 아파트 임대인이라 어떤 말씀인지 잘 압니다."
그날 저녁 퇴근 후에 무언가에 쫓기듯 회신을 보냈다. 잔뜩 폼을 잡고 태연한 냄새 풀풀 풍기는 말투로 답장을 했다. '당신은 나를 길바닥으로 추방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아!'라는 문체로 말이다. 소심한 발악이었다. 하지만 발악해야만 했다.
"나가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계약 해지를 먼저 요청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발생하는 손해배상은 임대인께서 보상해주셔야 합니다. 잘 아십니까?"
떨리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한번 더 문자를 보냈다. 오타는 없는지, 오해는 없을지 여러 번 확인한 뒤에 쫄보처럼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한때 공인중개사시험을 1문제 차이로 아깝게 탈락했던 경험을 최대한 복기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민법 판례스러운 표현까지 끌어다 썼다. 임차인의 맛이 단맛이 아닌 쓴맛이라는 걸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발악해야만 했다.
"제가 나가서 새집 구하는 중개사 수수료, 이 집에 살면서 재계약 후 연장하면서 했던 수리비용, 전세대출 연장으로 인해 생긴 수수료, 대출 조기 중도 상환 수수료 등 합치면 0000만 원이 발생합니다."
사실 그대로의 액수였지만, 가감 없이 양보 없이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발악의 결과는, 반쪽짜리 승리.
"그랬군요. 그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계약기간까지 계시는 걸로 하죠."
"대신 계약이 끝나는 '22.2월에는 집을 비워 주셔야 합니다."
시간은 벌었다. 무려 1년을.
하지만 상황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지금 오손도손 살고 있는 집을 떠나는 것은 바뀌는 게 없었다.
초라했다. 투자/투자/투자 만 외쳤던 나 자신이 처음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작더라도 자기 집 하나씩 들고 있는 회사 선배들이 부러웠다. 그들 모두 그동안 내가 이룩했던 투자 이익을 부러워했지만 그날만큼은 선배들이 하나 같이 부러웠다.
한 숨 돌렸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전쟁터에 눈 밭을 거닐고 있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지나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추운 겨울에 이사를 또 해야 한다는 상상이 겹쳐지나 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 길로 달려 나가 그동안의 노하우를 모두 담아 투자해 두었던 ㅇㅇ구 아파트를 팔아치워 버렸다. 지하철도 생기고 재건축 이슈가 있는 황금 투자처였지만, 임차인의 쓴맛을 안 이상 더 이상은 그런 황금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늘부터 황금은 '내 집에 내가 안전하게 사는 것'이라고 재정의를 해버렸다.
매도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부동산에 찾아온 매수자와 짧은 대화.
"왜, 이렇게 빨리, 제 가격보다 낮게 파시려고 하세요?"
"네 사정이 있어서요"
이렇게 내 첫 집 프로젝트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