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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un 30. 2022

쥐도새도 모르게 공사 염탐

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전셋집에서 쫓겨났다. 집을 샀고 인테리어가 시작됐다. 추운 겨울, 연초에 시작된 인테리어 공사는 총 53일간 진행됐다. 휴일, 대통령 선거, 3.1절 등을 제외하면 실제 워킹데이는 37일뿐이긴 했지만 총 53일간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53일의 기간 중에서 약 50일. 비중으로 치자면 94.3%.


아내도 모르는 사실이며, 어쩌면 인테리어 실장님 (황승호 대표님, 스튜디오 디자이언) 께서도 모르고 있을 사실인데, 전체 공사 기간 53일 중에서 50일가량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을 방문했다. 먼지가 정신없이 휘날리는 철거 당일 밤늦게도 방문을 했으며, 바닥을 모두 부숴버린 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귀신처럼 현장에 나타났다. 전기 공사가 있었던 날에는 편의점에서 손전등까지 사들고서 기어이 현장을 방문했다. 퇴근길에 방문하지 못했을 경우라도 생기면, 가족 모두가 잠들면 차를 몰고서라도 현장을 갔다. (공사 기간 동안 인근 모처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지냈다.)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들 만큼 집이 '파괴'되고 있을 때 기록으로 남긴 사진이다


"현장에 자주 가서, 공사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해."


사실 이런 목적은 아니었다. 현장 총괄 책임자와는 충분한 신뢰를 쌓고서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감시라는 것은 성립되기 힘든 조건이기도 했다. 이미 준비 과정에서 조율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신뢰도 깊이 확인을 했고, 그동안 쌓아온 포트폴리오의 완성도 또한 결과물에 대해 신뢰를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진중한 실장님이라는 '인격적'인 유추/판단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감시'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었다. 흉흉한 세상에서 그런 분을 만난 건 어떻게 보면 행운이기도 했다. 솔직히 시방서대로 잘 만들고 있는지, 자재는 올바른 것을 쓰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거나 체크할 지식도 없었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부터는 그냥 한배를 탄 것이었기 때문에 완성도에 집중할 타이밍일 뿐이었다.




94% 방문율. 어쩌자고 그런 빠숑(passion)을 드러냈을까.


돌이켜 보면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이 결과를 단순히 '열정'이라고 포장하기에는 방문율 94%라는 것은 다소 섬뜩한 수치이기 때문에 'Almost 개근상'의 힘의 근원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유, 그만 가. 관음증 걸린 사람처럼 왜 몰래 가서 봐? , 그냥 당당하게 사람들 있을 때 문 열고 들어가~"

"그래도, 일하는데 내가 자꾸 가면 감시받는다는 느낌 들 수도 있고, 집중이 안 되잖아."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은 성적 도착증 중 하나로,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행위를 몰래 보거나 촬영을 하여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 관음증의 해석이 이렇게 신랄한지 처음 알았다. '몰래 본다'라는 의미일 줄 알았는데 끝을 보는 것이었다니!


그렇게 어느 날 내 열정은 관음증이라는 '정신건강 장애' 진단을 받게 됐다.


저녁 5시가 되면 작업 현장은 대 부분 셧터가 내려진다. 퇴근 후 나는 항상 이곳을 향했다. 내 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열정이거나, 극성이거나, 아니면 정말 변태이거나


공사가 없는 주말이 되어서야 쓱~한번 현장을 둘러보고 오는 것은 성격상 허용이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축구 경기를 하게 되면 우리 팀과 상대팀의 전술, 선수 특징을 이해하고 경기의 과정 과정을 쫄깃하게 느끼면서 관람해야만 '아, 경기 한번 맛있게 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는, 7일에 겨우 한 번씩 공사 현장을 구경하라는 것은 마치 월드컵 경기의 전반전 스코어와, 최종 스코어만 확인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첫 책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를 출간할 때도 그랬다.


"인쇄소까지 작가님이 오시는 건 처음 봐요"


어떻게 보면 열정이었고, 다르게 보면 극성이 분명했다. 집 인테리어의 경우도 설계 과정의 7할은 직접 손으로 도면을 그렸기 때문에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는 집은 하루하루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감시 거리라고 하기에는 모든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저녁의 공사 결과가 궁금해서 근질근질했고 가지 못한 며칠간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착증' 같은 질환은 아니고 '극성과 열정사이'라고 포장하면 어떨라나.   


결국, 나중에는 대 놓고 흔적을 남겼다. 이온음료, 비타민음료, 인근 지역 편의점 박카스는 모두 이 집에 와 있었다.




사실, 공사 과정에 있어서는 어느 하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린 것도 없다. 그저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응대를 해 드렸고, 가끔씩 관심 갖는 척 연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너무 모른 척하면 작업자의 열정도 사라질 수 있으니).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갑이었을지는 몰라도, 공사가 시작되면 '을'이 될 수 있다는 인테리어 경험담처럼 뒤로 한발 물러난 척했지만, 나는 항상 염탐 중이었다.


'지켜보고 있다' 짤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아마 황승호 실장님도 이 글을 본다면 분명 말하실 거다.


"저도 님 같은 고객님은 처음 봐요"


멋진 우리집, 멋진 스튜디오디자이언 황실장님의 작품

* 사진출처 = 스튜디오 디자인언 블로그 (http://blog.naver.com/studio_dez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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