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 부장의 첫 집 첫 인테리어
ㅇ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예산 초과
ㅇ 공사 도중 발견 못한 낡은 설비 문제
ㅇ 연애는 탐나지만 결혼은 안 내키는 디자인 시안
ㅇ 호기심일까 오지랖일까. 알 수 없는 현장 공사 진행 상황
하지만 어딜 가든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은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결국 인테리어 하는 데 있어서도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큰 이슈 거리였다.
"여보, 그냥 벽은 놔두고, 깔끔하게만 수리하는 게 어때?"
"음, 그래도 첫 집이고 나중에 이 집에서 죽을 수도 있는데 조금 더 욕심 내자"
......
"여보, 마루는 많이 찍힌다던데 하이브리드 마루로 가자"
"디자인이 다 별로다. 그리고 너무 비싸다. 그냥 강화마루로 가자"
......
"냉장고는 그냥 가져가는 게 어때?"
"거실 중앙에 나와있는 가전인데 함께 바꾸는 게 낫지 않아?"
이성적이고 실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와이프와 감성적인며 구조/조화를 중요시하는 남편과의 대화는 지루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일이 잦아졌다. 인테리어 실장님과의 의견 조율, 설득도 많이 필요했지만 버금가는 어려움을 꼽으라면 가족 구성원끼리 타협하고 조율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름의 고민을 했었을 와이프의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냥 그냥 이건 살리자"
"이게, 벽에서 툭 튀어나오면 좀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 편하고 좋잖아"
..........
"추운데 베란다를 확장하려고?"
"베란다가 항상 짐 쌓아 놓는 공간으로만 쓰였잖아. 넓혀서 시원하게 쓰는 게 낫지 않아?"
"추워지잖아. 그럼 이중창 새시를 달자"
"주상복합에서 내부에 새시를 또 달면 이상하지 않아?"
"......"
작은 부분, 큰 부분 가릴 것 없이 자꾸만 평행선을 달리는 시간만 누적되어 갔다. 사실, 인테리어를 시작하면서 이번 인테리어는 첫 집, 첫 인테리어이기 때문에 와이프에게 선물을 주는 것처럼 모든 것을 일임하기로 마음먹긴 했었지만, 와이프 입장에서는
'뭐야, 나 보고 다 하라면서 왜 참견이야.'
남편의 끊임없고 끊김 없는 '겐세이'가 상당히 지겨웠을 법도하다. 하지만 이 집, 나에게도 첫 집이고, 남자인 나도 원했던 집의 로망이 있었는데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목동의 폭풍 오지랖퍼로써 야금야금 레이아웃 구성에도 관여를 했고, 각종 자재 선택과 가구 구성에 있어서도 점점 더 와이프의 의사결정을 얻어 내는 구조로 바뀌어 가긴 했다.
사실, 조금은 억울한 면도 있다.
"여보, 기왕이면 안방의 벽면과, 둘째 방의 벽면 라인이 일직선으로 맞추는 게 깔끔하지 않겠어?"
"둘째 방이 너무 작잖아. 라인 침범해도 방 넓게 쓰고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
"고객님, 안방의 라인과, 둘째 방의 벽 라인은 일직선으로 맞출 겁니다. 그래야 깔끔합니다."
"안방 벽면은 TV가 들어가서 10cm가 앞으로 나올 거고, 거기에 맞춰서 둘째 방도 조절될 겁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분명 똑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를 해본 것이라 생각했는데 분명히 답변은 달랐다. 왜, 같은 맥락의 말이라도 남편의 말은 신뢰도가 다소 낮은 것일까? 어떻게 말해야만 전문가의 의견처럼 쉽게 설득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인테리어에서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은 구성원들 간의 의견 조율도 아주 크게 차지하는 건 분명했다.
긴 조율의 터널을 지나서 결론을 내렸다. '거의 다 새로 허물고 만들자고'. 주상복합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단단한 내력벽이 층과 층 사이를 지탱해 주지 않고 H빔 철근 기둥으로 받쳐 주기 때문에, 원한다면 모든 벽면을 다 허물어서 새롭게 레이아웃을 짤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에 기회였다.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는 기회.
대신 가벽 재 설치를 위한 목공 비용, 천장 석고보드 재 설치, 수도관 이설 비용 등의 각종 공사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단점은 있지만 예산 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만 있다면 원하는 대로 집 구조를 바꿔 보는 것은 더 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특히, 구석에 있는 부엌을 거실 맞은편 방으로 통째로 옮겨버리는 , 소위 말하는 A타입의 판상형 레이아웃으로 바뀐 집도 봤기 때문에, 레이아웃 재 구성하는 계획은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몽땅 '부숴버리는 목적' 은 3가지.
1. 주상복합의 단점인 통풍을 해결하려면 맞바람이 불어야 한다. (중간 벽 허물기)
2. 창문에서 채광이 잘 들어오면 좋겠다. (중간 벽 및 발코니 확장)
3.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서재 만들기)
통풍, 채광, 서재라는 3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결국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허물고 재 구성하는 '올 수리'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결정 뒤에는 잭팟 기계에서 숫서의 숫자도 올라가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