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들바람 솔솔 부는 시애틀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by 김지수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여행의 베이스캠프는 시애틀이었다


미국 북서부 최대 도시이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본거지, 스타벅스의 고향, 아마존 본사가 있는 곳.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로도 국내에 잘 알려진 도시인데, 무엇보다 누나가 그곳에 살고 있기에 이번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취소가 불가한 항공권을 서둘러 구매하는 바람에 입국과 출국 모두 시애틀로 하게 되었다.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진짜 여행은 1,4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었다. 목적지와 먼 도시로 입국하니 조금은 어색했다. 강릉에 숙소를 잡고 서 울을 구경하러 가는 느낌이랄까.


6월 30일 토요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시애틀로 출발했다. 드디어 삼대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마음도 모르고 아들 녀석은 차에서 잠이 들었다. 여행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출발 네 시간 전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탑승 수속이 너무 빠르게 끝나서 세 시간 넘는 여유가 생겼다. 1분 이상 대화가 오가지 않는 남자 셋이 모여 세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쇼핑이라도 하면서 어색함과 무료함을 달래려 했지만 남자 셋이 유모차를 몰고 쇼핑이라니 더 어색해 졌다. 광장에서 공연하는 국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구매해둔 면세품을 찾았다. 여전히 길고 긴 시간이 남아 있었다. 면세점 안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a8ZKzfuhYvEXcgZK5cbo3Ea4bFc.jpg
6xHWQdNn6Qso_evmaG5jFgh4mLs.jpg
wr1HmSSXNyPKYXoiS7sGBtHSlYo.jpg
그래도 아이들 놀 거리는 있었지만 미끄럼틀 같은 놀이터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니, 뭐 살 거 없나?”

“한 번 보러 갈까요?”


아버지와 나는 쇼핑의 개시를 알리는 힘겨운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적극적인 자세로 면세점을 활보했다. 숨겨왔던 쇼핑 본능이 살아난 순간. 주류점과 문구점에 들르고, 미국에서 먹을 한국 음식을 사두고, 사막의 더위를이기기 위한 부채도 구매하고, 서점까지 둘러보니 우리 삼대 꽤잘 어울리는 쇼핑 친구 같았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한 시간 이상의 쇼핑은 무리일까. 아버지도 나도 아들도 점점 지쳐갔다. 출국장 앞에 아이를 풀어놓았다. 쉴 곳이 마땅찮아 남은 두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조형물에 들어가서 놀기도 하고, 서점에서 장난감 스티커를 사서 놀기도 하니 아들 녀석의 생기가 돌아왔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비행기에 올랐다. 시애틀까지는 아홉 시간 반을 가는 긴 여정. 이를 위해 스마트 패드도 완충해왔고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내려받아 왔다. 그런데 기내에서 제공하는 어린이 콘텐츠가 매우 충실해서 시애틀에 도착할 때까지 아들의 시선은 좌석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밥 중의 밥은 기내식이라고 했던가. 맛있는 기내식을 즐기며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옆에 두 남자는 이미 꿈나라에 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태평양을 거의 다 건너온 느낌이 들었다.



RsHgUbWRutc1Y29OOgZX1gRpVU8.jpg
8y8DtJRrwOkLNA-0lO4d6vNZKhA.jpg
miZQQGhD_D1kaco7sCaLt79jyRU.jpg
이 녀석은 잠이 들고 착륙하여 내릴때 까지 푹 잤다. 좋아하는 음료수도 뒤로 하고 말이다.



시애틀이란 도시는 처음이야


시애틀 시각 오후 12시 30분. 시차라는 것은 늘 신비로웠다. 분명 서울에서 토요일 저녁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토요일 점심 시간이다. 곤히 잠든 아들 녀석을 겨우 깨웠다. 마음이 급해진 아버지는 벌써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대기 중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으로 향하는 길 눈앞에 에스컬레 이터가 나타났다. 다시 잠들어버린 아들 녀석이 유모차에 앉아있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미 내려가버린 아버지를 신음하듯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이는 한밤중이었고 짐이 많아 유모차를 통째로 들고 갈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괴력을 발휘했다. 아이를 젖은 이불처럼 어깨에 들처 메고 양손에유모차와 짐을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등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힘들게 입국장에 도착했지만 대기하는 인파의 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두 시간이 흘러도 입국의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새삼스레 유모차의 위력을 실감했다. 아이와 여행할 때는 유모차가 ‘최애템’이라는 여행 선배의 말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비좁아 불편할 법도 한데 미동도 없이 아들 녀석은 두 시간째 쿨쿨 자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설렘도 잠시, 이제는 영어 모드로 언어를 전환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버튼 하나로 영어가 술술 나오면 좋겠지만 내 용량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해외 생활도 제법 했고 국제 학교 출신이기도 했지만 10년간 쓰지 않은 영어를 다시 쓰기가 쉽지 않았다. 입국 세 시간만에 심사대 앞에 섰다. 가족은 한 번에 심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함께 심사를 받을 수 있으니, 미국 유학파인 아버지 덕분에 입국 심사가 원활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갑자기 ESTA 같은 각종 서류 뭉치를 나에게 넘겼다.


“잘 보관해둬.”


나더러 그들을 상대하라는 의미였다. 다시 등줄기에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갑작스럽게도 우리 삼대의 미국 입국 여부 는 내 영어 실력에 의해 결정나게 되었다. 떨리는 입국 심사가 진행되었다. “왜 미국에 왔니? 어디 갈

거니, 어디서 잘 거니?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니?”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만 쏟아졌다. 깨끗한 음성으로 뇌리에 박히는 쉬운 질문이라 안심했다. “Next(다음 분)!”이라는 반가운 외침과 동시에 우리는 미국 땅에 정식으로 입성했다.


매형이 마중 나와 있을 텐데 기다리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18킬로그램짜리 여행 가방을 찾아 출구방향으로 나가니 반가운 매형이 보였다. 우리보다 더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먼 곳에서 익숙한 사람을 만나니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시애틀 공항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라는 말이 다소 위로가 되었다. 시애틀은 아주 시원한 바람이 부는 도시였다. 하늘은 컴퓨터 포토샵에서 만들어낸 하늘색만큼 깨끗했다. 도시의 ‘공기맛’이 달랐다. 한국에서 실컷 흡입해온 텁텁하고 습하고 후끈한 공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수수하고 시멘트 색깔이 주를 이루는 평범한 도시였지만, 곳곳이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AIAAg3GcEyAJmnTqr4Y4VUkFQYQ.jpg
XBHyRqFOrB9jjaHQjQlJtFHcgaM.JPG
-E6ytsTlaP3oNcmJoo9Q1oA2RiA.jpg


말 그대로 건물 반 나무 반. 그 숲이 이토록 깨끗한 공기의 원동력이겠지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도심과 녹지 공간의 비율을 법으로 철저히 정해둔다면 자연스레 도시 정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누나의 집에 도착했다. 동생이 와서였을까, 아니면 친정아버지가 와서였을까. 전혀 예상치 못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오후 세 시가 넘어서 먹는 점심 식사,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에 먹는 밥이었다. 어릴 적 티격태격하던 그 누나가 만든 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멋진 음식이었다. 혹시나 사온 음식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잡념은 접어두고 맛있게 먹어치웠다. 미국 시각으로 오후 여덟 시경이 되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우리 삼대의 정신은 시차 때문에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그냥 잠들기는 아깝다는 중론이 모였다. 모두 근처에 있는 ‘타깃’이라는 마트에 갔다. 마트에 들어서자 정말로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안타깝게도 체력은 거의 방전된 상태였다. 졸음이 밀려와 마음 같아서는 카트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흥에 겨워 보였고 아이들은 게임기 코너에서 싱글벙글이었다.


좀비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번개같이 환복하고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으앙…….”


잠이 확 달아나는 아들의 울음소리. 녀석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며 침대에 누운 채 울고 있었다.


“울지 마. 아빠도 엄마랑 같이 오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어.”


아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고 있으니, 나도 세상을 떠난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녀석을 달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슬픔에 젖은 채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니 7월 1일이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새벽 네 시경에 저절로 눈이 번쩍 떠졌다. 누군가가 그랬다. 여행을 가서 새벽에 눈이 떠지면 절대로 침대에서 일어 나지 말라고. 그래야만 시차 적응을 할 수 있다나. 다시 잠들 수 없다 해도 누워 있으면 좀 낫다는 말이 떠올라 잠깐 누워 있긴 했으나,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시원한 아침 바람이 느껴져 곧바로 창가로 향했다. 시애틀의 아침은 너무나도 개운하고 상쾌했다. 한국이었다면 섭씨 30도를 육박했을 텐데 그날 아침 오전 기온은 14도였다.



d8cvz9JXZkGxlVcKlPYMSaOItLI.JPG
mf5-1Q_PG1bblts9u0ruKHJ7hIU.JPG
hKH33sncQXJ1n7RnDqUoNcHXI78.JPG
시애틀 Bellevue의 평범한 가정집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당 밖에서 뛰놀 수 있는 주택살이 의 일상에 감탄하는 사이, 교회에 갔던 누나네 가족이 돌아왔다. 그날 오후 다섯 시경 우리는 시애틀을 떠나 라스베이거스 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무제-3.jpg

책 더 둘러보기


1) 교보문고 링크 클릭

2) Yes24.com 링크 클릭




#두사람출판사 #그렇게몽땅떠났습니다 #미국여행 #미국서부여행 #신간 #책 #책스타그램 #여행에세이 #여행서적 #시애틀 #라스베가스 #오레곤 #그랜드캐년 #캐피톨리프국립공원 #브라이스캐년 #자이언국립공원 #포레스트검프포인트 #아치스국립공원 #홀슈밴드 #앤틸로프캐년 #올림픽국립공원 #김지수


Screenshot 2019-12-28 at 20.56.55.jpg


keyword
이전 08화여행사 없이 여행을 기획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