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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Feb 06. 2023

어른들은 왜 밥을 챙기려 할까

그들이 애써 표현할수 있는 방식

  예전에는 보이는 것만 봤다. '아버지는 원래그래'라며 중얼거리던 말들이 그렇다. 나이를 먹을 수록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들을 더 자세히 느끼기 시작했다. 스물두살, 설 연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시골집에 내려가고 홀로 집에 있었다.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무작정 집에 놀러오겠다고 조르는 게 아닌가. 별일이 있겠나 싶어서 데려오긴 했는데 영 찝찝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을 때다. 맥주를 마시며 한 창을 떠들다가 피곤해서 잠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문득 났다. 설마 하던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현관에는 못보던 신발이 있었고, 눈이 뒤집어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남자친구를 무척 혼내셨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무릎을 꿇고 어쩔줄 몰라 '네.네.네!'하던 그 애가 생각이 난다. 지금도 여러 생각이 드는 일화다. 짐 보따리를 챙기며 집을 나서려는 그에게 아버지께서 나지막히 말하셨다. "그래도 아침밥은 먹고가라."


 십 여년이 흐른 지금. 문제의 설날이 또 다시 찾아왔구나.복작하지만 여유롭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고향은 남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편안한 곳이다. 이유는 아마도 집 앞에 바로 바다가 있기 때문인가 싶다. 동해처럼 사방이 탁 트인 바다는 아니고 여러 섬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다. 도시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가는 길은 영 편안하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약 5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한다. 명절에는 최소 7~8시간 잡으면 빨리 도착하는 축에 속한다. 유년시절 흐릿한 기억으로는 1박2일이 걸린적도 있었다. 어쨌든 귀성길의 설렘과 귀경길의 뿌듯함을 뒤로하고 올해의 설 연휴도 끝났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도착한 곳에는 늘 반겨주는 이들이 계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분들의 삶 전체가 깃들어 있는 고장이 바로 이 곳. 언제부터인지 안식처가 되어 버린 것이다. 20년도 전에 떠나셔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대신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겉으로는 참 투박하고 거친 분이셨다. 목소리도 맛깔나고 시원시원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들어보지 못한 육두문자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셨다. 사투리가 심하셔서 가끔 아버지의 통역이 필요하기도 했다. 친절한 할아버지도 다소 불친절한 할머니도 따뜻한 분들이었다. 표현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


 마당에는 하얀색 진돗개를 키우셨다. 백구. 전형적인 시골강아지 이름. 집안식구들이 찾아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긴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집을 지킬 때는 또 얼마나 프로페셔널한지. 고양이가 집앞을 살짝만 지나가도 바로 왈왈 짖는다. 침입자나 도둑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구별을 참 잘해서 내가 시골집에 갈때 짖은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 백구의 문제는 할머니를 좋아하는데에 있었다. 여느 강아지들이 그러하듯이 반갑다고 손을 햝고 안기려 하는것이다. 옛날사람의 정서로는 받아주기에 다소 과한 애정표현이었다. 욕을 따발총으로 뱉으시고는 했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먼 길을 가실때도 있었는데, 그럴때에는 백구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다행이도 작은 아버지께서 근처에 사셨다. 백구에게 밥을 제때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작은아버지 전화가 오면 매일 백구를 들여다 볼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대화 말미에는 이말을 꼭 붙이셨다. "그런데 너 개 밥은 줬냐?"


  이 고장에서는 떡국에 굴을 넣어 같이 끓여 먹는다. 바닷가라서 그런가.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떡과 굴이 수북히 얹어진 국그릇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마치 바다를 먹는 기분이랄까. 허기를 후딱 달랜 뒤 성묘를 갔다. 산을 올라가다 보니 도깨비 풀이 나풀거리는 치마에 다 붙어버렸다. 털어도 어차피 내려올 때 또 붙을게 뻔했다. 가시같은 풀발이 거슬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할머니께서 생전에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진분홍색이었다고 한다. 꽃 역시 참 좋아하셨다고. 문득 시골집 마당 백년초 선인장과 무화과 나무가 아른거린다. 애처롭게도 그 모든 것들을 막상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알게됐다. 그리하여 산소에 갈 때에는 언제부턴가 진분홍색 꽃을 사가기 시작했다. 평상 가운데에 꽃을 내려 놓고 돌로 고정하고 무심하게 내려온다. 돌아설 때에는 여러 생각이 든다. 이미 돌아가신 뒤에 이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가도 매번 꽃을 사게 되더라. 우리는 모두 후회를 피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발악하며 사는게 아닐까. 정체된 도로를 뚫고 귀성,귀경길에 오르는 것도. 산소에 진분홍색 미니장미를 두고 내려오는 것 역시. 혹은 그릇에 수북히 하얀 쌀밥을 퍼올리는 일같은 것들이.


 시끄러운 내 속과 달리 바다는 언제나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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