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존재를 만난 이후로
TVING 예능프로그램 서울체크인 1화를 보면 가수 이효리 씨가 MAMA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며 이 말을 외친다.
"아이고 끝났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 또한 조리원에 들어와 매일 이 말을 외치고 침대에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열정을 마구마구 쏟은 나에게 주는 달콤한 야식 같은 말이랄까. 프로그램을 보는데 이 장면이 왜 이렇게 개운하고, 좋았는지 모른다.
밥을 든든히 먹고 평온히 잠에 든 초록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멋진 엄마. 착한 엄마. 책임감 강한 엄마... 엄마에게 붙일 수 있는 참 많은 수식어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러다 아침에 남편과 영상 통화하며 남편이 초록이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초록아. 니 엄마가 ㅇㅇㅇ라니 너 참 복 받았다 진짜. 야~~ 엄마가 ㅇㅇㅇ라니!!!"
그래. 어떤 엄마가 되려 하기보다는 내 존재 자체로 초록이와 함께하면 되겠구나. 잘 못하면 잘 못하는 대로, 잘하면 또 잘하는 대로. 초록이가 세상에 태어나 만난 엄마는 바로 나니까 아무 기준도, 비교대상도 없이 그냥 내가 하는 그대로가 얘한테는 '엄마'가 되겠구나.
흔히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표현을 할 때 케바케(case by case)라는 말을 쓴다. 이와 유사하게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애바애(애 by 애)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쓴다. 아이마다 성장 속도와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분유가 잘 먹힐지, 이 젖병을 잘 사용할지 등등 모든 변수는 아이마다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엄바엄(엄마 by 엄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냐에 따라 그 영향을 고스란히 아가가 받을 테니 말이다. 내가 끊임없이 다른 엄마와 비교를 하면 난 믿도 끝도 없이 어떤 엄마보다 작거나 큰 엄마가 될 것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엄마가 된다면 아이에게 언제나 완성형인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자동실(엄마와 아이가 모두 건강한 경우 분만 직후부터 엄마와 아이를 같은 방에 있게 하는 방법) 시간에 초록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밤 8시에 나오는 간식을 먹고, 씻고 정리하고 9시쯤에 침대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온다.
"아이고아이고, 끝났다~~~~"
오늘 하루의 삶이 이미지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초록이의 표정 변화, 눈을 마주치며 공감했던 모든 순간순간들.
여전히 서투르지만 하나씩 알아가고 익숙해짐에 느끼는 보람과 감사함까지.
밥 든든히 챙기고, 몸 추스르고, 잠 푹 자고, 좋은 생각 많이 하고...
초록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 모든 것들에 이유가 하나씩 더 늘어났다.
초록아,
너의 존재가 내 삶의 이유라는 그런 큰 부담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다만 내 삶 곳곳에 너라는 감사한 이유가 퍼졌기에 좀 더 나은 오늘, 내일을 살 수 있게 돼.
고마워!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