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도 사랑할 수 있는가.
무채색이 가득한 그의 집이 가물가물하고 그의 엄마가 들려준 무채색 이야기가 가물가물한데, 나는 엄마가 보고싶다. 미치도록 보고싶다. 그리고 홍콩의 가을이 보고 싶었다.
프로이트는 집을 '자궁'이라고 하고 칼 융은 '피난처'라고 했는데, 나의 엄마와 아버지는 집이 없다. 어쩌면 아주 편안하게 웅크리고 자야 할 자궁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병이 든 나의 아버지는 마지막 여생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머물겠다고 했다. 평생을 간호사로 살았던 엄마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버지를 위한 간호사로 살겠다고 했다.
엄마의 '자궁'도 그 곳이었을까.
홍콩 메기즈 센터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위해 가정집 모양을 했지만 가정집이 아니고, 예술의 혼을 넣었지만 미술관은 아니고, 종교적 성향을 띄었지만 교회는 아닌 그런 호스피스 병동을 지었다.
나는 병원을 방문하면 좌절감이나 환영받지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병원에서 평생을 일한 엄마가 다시 병동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게다가 호스피스라니, 평생을 하얀 병동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아픈 환자들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냈을 나의 엄마에게 죽음의 곡소리조차 묻혀버릴 하얀 색 건물로는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다.
"만일 우리의 행복이 심미감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 감옥같은 창문과 얼룩진 카펫 타일, 플라스틱 커튼 같은 것들을 바라보도록 강요하는 병원 환경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라고 역설했던 알랭드보통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나는 강박증처럼 하얀 건물을 싫어했다.
-여보, 황해도 해주가 지척인데 그곳에서 누이와 어머니와 살결을 맞대고 냄새를 맡고 기쁘고 슬픈 속 사정을 말하고 싶소.
-그런 날이 올 거예요.
엄마와 아버지는 그렇게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여보,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보면 예쁜 옥색 구슬로 보인다고 하네요. 여기 사진을 좀 보세요 해주가 보이나요?
임종이 임박한 아버지를 위해 엄마의 언어는 아주 편안하고 아늑했다. 사랑하면 닮아간다고 했나. 그늘이 많은 아버지 옆에는 웃고 있어도 슬픈 엄마의 그늘이 드리우고 호스로 연명하는 아버지의 목숨 줄 끝에 엄마의 뽀얀 살은 늘어지고 근육이 사라져갔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앙상한 뼈마디만 보일때 나는 말했다.
-엄마, 이러다가 엄마가 죽어...
-홍콩의 가을이 보고싶어.
1년 째 놀고 있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가족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엄마가 보고 싶기 때문인데... 그는 태오를 무릎에 앉힌 채 책만 읽고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한다는 그는 여전히 강박처럼 연두색 형광 펜을 손에 쥐고 있었고, 처음 만난 그 느낌처럼 입을 오물거리면서 책의 문장을 암기했다.
'내가 듣지 않는데, 이제 누구를 위해 저 문장들을 나열할까?'
-자기 엄마는 홍콩에 있잖아.
-그니까 가자고...홍콩, 지금 쯤이면 홍콩은...
그리움이 묻어있는 홍콩을 말하는데 그는 홍콩의 지식을 나열했다.
-홍콩의 가을이라. 지금 가면 홍콩은 늦 여름이겠네.
휴대폰으로 검색을 한 것이 하필이면 홍콩의 날씨라서, 여전히 나의 과거는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움이 묻어나는 엄마이야기는 채 꺼내지도 못했는데 그는 말했다.
-홍콩은 지금 한 낮의 기온이 30도야. 습도는 60퍼센트나 되네. 꼭 가야 돼?
맨드라미가 가득한 병풍도를 갈 때는 그의 고양이 태오 때문에 못 간다고 하지 않았나. 내 목소리에 비아냥이 들어갔을 수 있다.
-태오를 데리고 가자.
의아하다는 듯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메기즈 센터 건축 양식을 예찬하기 시작했다. 나의 엄마가 계신 그곳이 그가 나열하는 상식으로 대체 되는 것이 끔찍했다.
-건물의 디자인이 병을 회복 시켜 줄 수 있다고 믿어?
-어느 정도는...
그가 물었고 내가 답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시에 있는 아케르후스 병원과 메기즈 센터와 다른 점이 뭔지 알아?
-뭔데?
-치유센터가 따로 구비되어 있는 거지. 마치 요새처럼 감싸고 있어서 그 곳이야 말로 실버 타운이지.
'우리 부모님이 계신 곳은 요양소가 아니야. 엄마는 거기서 쉼을 얻은 게 아니라 죽음을 준비했던 분이야. 아버지를 위해서!'
말하지 못 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속울음이 차오르면 목 젖까지 차오르는 문장을 다른 누군가와 대화했다. 그게 유미였을 것이다.
아직 아기를 가졌다는 말도 못했는데 우리는 홍콩을 택했고
아직 엄마가 계신 곳을 가지 않았는데 그는 쇼핑을 하자고 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엄마도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다.
그를 사랑한다고 믿는 나는, 그의 말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았다. 홍콩의 가을에 엄마가 있는데, 아직 나는 그를 따르고 있다. 습도가 가라앉은 밤이 되어서야 홍콩의 밤이 보이고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기억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아...거짓도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