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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01. 2020

은밀한 이야기 ep 1.

너의 하루는 어때...

시작은 상담하는 사람과, 상담을 받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벚꽃을 닮은 연 분홍 꽃이 자잘하게 박혀있는 원피스를 휘날리며 들어왔고,

어느 날은 물 빠진 청바지를 발목이 도드라지게 입고 왔다.

어느 날은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분홍 빛 입술이 하얀 치아를 돋보이게 했고,

어느 날은 긴 생머리를 아주 흔한 고무줄로 생뚱맞게 묶고 그 묶음 사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찰랑대니

-어려서 그런가...

그녀는 그렇게 예뻤다.

그렇게 예쁜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머리와 본능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예쁘고 좋은 것에 어깨와 눈웃음이 먼저 반응하는, 그녀는 에니어그램 2번.

가슴형이라고 한다. 조력자 유형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2번 유형은 참 수다스럽다.

하루 일과를 조잘대며, 기뻤던 일에 격한 리액션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슬픈 일에 바로 눈물 흘리는 세포로 호흡하는 유형이다.


-선생님, 저는 큰 거 원하지 않아요.

  갑자기 비가 오면 우산을 가져와서 씌어주고, 눈이 오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를 남자 친구랑 손잡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고 싶어요.

-아주 쉬운 미션인데, 남자 친구가 안 해줬나요?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가는 느낌이래요.

-저런...

-자기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했대요.


처음에는 상담하는 사람과 상담을 받는 사람이었다.


5회의 상담이 끝나고 그녀와 여행을 가고, 친구가 되어가니 나는 그녀가 뱉어내는 감정이,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조잘대는 그래서 들어주는 내가 엄마 미소만 보여주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비가 오면 우산이 되고, 눈이 오면 같이 뒹굴어 줄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이다.

상담이 없어도 여행을 가지 않아도 그녀는 그녀의 하루 일과를 보고했다.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어도 식어가는 파스타 앞에서 그녀는 그녀의 하루를 보고했다.


어느 날은 조잘대는 입술을 멈추고

-제가요... 엄마를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엄마가 많이 아프셨어요.

아픈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에게 기대어 울어보지 못하고, 친구 험담을 하면 엄마가 걱정할 까, 떨어진 성적에 가슴 아파할까 봐...


잠깐 놓쳤다. 그녀의 말을

그녀는 울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데,

우산 못 챙겨주는 마음에 속상해할까 장대비를 맞으며 집으로 뛰어갔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울었다.



-선생님, 저는 사람들에게 우산이 되어 주고 싶어요

-우산을 씌어주는 남자를 만나야지요.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에서 정해인이 손예진에게 우산을 씌어주는 장면이 따뜻하고 좋아요.

-비를 맞고 뛰어가서 우산을 하나만 사 왔죠? 그 빨간 우산이요?

-네, 선생님... 저는 말하지 않아도 먼저 손 내밀어 주는 남자가 좋은데... 그런 남자는 없겠죠? 내 감정을 다 드러내야만 알겠죠?

-남자보다 먼저, 엄마를 놓아주세요..

아픈 엄마를 돌보는 역할에서 자유함을 주고 싶었다.

하루 일과를 예쁘게 정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끔은 뾰로통해도 되고, 가끔은 화내도 되고, 다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맞아요. 말하지 않아도 우산 들고 뛰어오는 남자에게 기대고 싶어요. 가끔은 가족을 잊고 싶어요...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잘 살고 있는지...

익숙함이  치유함이 되어 그녀는 그동안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잘 살고 있겠지...


가끔 궁금하다.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내가 먼저 물어보고 싶다.


-너의 하루는 좀 어때?


https://youtu.be/Cy-MXXFEc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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