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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26. 2020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3.

The Having

아네모네를 아세요?

인문학 수업은 원래 질문이 많다.

그녀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자기의 편임을 검증하는 방법으로 질문의 양을 채워갔다.

-꽃을 좋아하세요?

-아네모네 꽃말을 아세요?


어려운 유형이 있다. 에니어그램 6번.

이 유형은 임박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때, 자신의 강함이나 다른 사람의 보호를 통해 안전을 찾으려는 사람의 원형을 보여준다.

두려운 세상에서 위험을 탐색하여 친구를 만들거나, 도피 또는 투쟁을 통해 두려움과 불안을 방어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친해지기까지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상담을 통해, 다음은 그림 치유 수업으로 지금은 인문학 수업까지 나를 그렇게 알면서도 그녀는 매번 질문을 했다.

-나를 검증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저와 친구인데도?

-친구 맞지만, 그냥 습관처럼 확인하게 돼요...


6 유형은 탁월한 분석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단 신뢰하게 되면 대단히 충성스럽고 변함없는 친구로 남는다. 그런 그녀의 재능과 강점은 또한 ‘치명적인 결함’이나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한다.

남자 친구를 사귀기까지 그녀는 진중하게 검증한다. 그녀 말로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라고 하는데, 예쁜 그녀와 사귀고 싶어 하는 남자들은 심리학자가 아니다. 그녀가 6 유형이며, 검증하는 진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속된 말로 간을 보는 것인지 남자들은 모른다.


-왜 헤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이별의 이유를 모르고 찾아왔던 처음 상담 시간에는 어린 시절의 뿌리를 찾아가며,  그녀가 안전 주의자로 권위에 저항하며 검증을 해야 마음이 편한 이유를 찾아주었다.

-아빠를 밀쳤어요.

-누가요?

-작은 삼촌이요. 아빠를 아파트 베란다로 끌고 가더니 아빠를 위협했어요. 아빠의 몸이 기울어서..

그녀는 그때부터 세상을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고, 성장하면서 위험과 의심에 대한 내면의 느낌이 점점 더 확장되었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작은 삼촌이 아빠의 돈을 갈취해 갔어요. 아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분이고, 아빠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분인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저와 남동생을 잘 키우셨는데... 삼촌에게는 약했어요.


강하다고 인지했던 아버지의 나약함을 목격한 뒤로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자기 말은 곧 법이라고 말하는 권위주의자를 보면 답답해요. 말단 사원이라 어쩔 수 없지만 대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삶을 having 하지 못하고, 세상의 부정적인 데이터를 지각하는 그래서 위험이 닥치기 전에 스스로 boundary를 쳐버리는 그녀와 상담을 끝내고 그녀에게 맞는 그림 치유 방법을 찾아냈다.


 -보타니컬 아트 어때요?

-색연필로도 이렇게 예쁘게 그려지는군요.

일러스트처럼 획을 빠르게 그려가는 것, 물의 번짐을 지켜보는 수채화, 기름기가 흐르는 둔탁한 유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마음을 잡지 못했는데, 그녀는 색연필이 더해지면서 명암이 확고해지는 보타니컬 아트에 가슴이 뛴다고 했다.

-선생님, 아네모네 아세요?

-사진으로 봤는데..

-아네모네 꽃말은 아세요? 꽃말이요... 이룰 수 없는 사랑, 기다림... 뭐 그래요. 슬픈 사연을 가진 아네모네가 좋아요.

아네모네를 그리면서 자기를 투사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그림 치유는 유형 별로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내고 그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남자 친구는 문제가 없어요. 제가 문제죠... 뭐,

아네모네(Anemone)
꽃말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기다림.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사랑의 쓴맛.
제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 저의 모든 것을 드릴게요.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말들이 아네모네가 가지고 있는 꽃말이다. 가장 많은 꽃말을 가진 꽃인 만큼 전해오는 이야기도, 구슬픈 사연도 많은 꽃.  꽃말들을 조용히 읊조리면 모두 이별 후에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는 꽃, 그 꽃이 아네모네다.


섬세하게 색을 칠해가면서 이별의 아픔을 치유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네모네가 색연필의 색이 더해져 명암이 확실해질 때 나는 말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검증하고 싶고 저항이 오면  마음의 전원 스위치를 의도적으로 끄세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경계의 스위치를 의도적으로 off 하세요.

그래야 삶을 해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주세요. 본인의 뿌리를 인정해야 자유로워집니다.


The Having,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인문학 수업 교재로 사용하면서 내가 바란 것은 하나,  지나치게 피해망상적이며 자기 방어가 심한 그녀가 삶을 오롯이 느끼고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순간 그렇게 원했던 이상형의 남자와 제대로 연애를 하는 것이다.


Having을 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어요. 그건 바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에요. 간절히 원하는 마음은 ‘결핍’에 집중하는 거예요. 나한테 지금 없다고 느끼기에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거죠. << 더 해빙>>

그녀는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본인의 어린 시절의 뿌리를 찾았으니, 삶을 해빙하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했다.

꽃으로 가득한 스케치북을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행복해했다.

-와! 제 그림에서 향기가 나요!

-너무 해빙하시는 거 아닌가요? 종이 그림일 뿐인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건넨 말에 그녀가 눈꼬리를 얇게 뜨면서 말했다.

-선생님, 아마릴리스 아세요?  아마릴리스 꽃말이 뭔지 아세요?

-뭘까요...?

-침묵이요!


장난으로 건넨말에 그녀의 아킬레스 건이 살아났다.  오늘은 그녀의 질문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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