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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Aug 31. 2020

결핍 2. 저는 이혼한 여자입니다.

셀로판지가 투명했나요?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이 마음이 아플 때 말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고, 그때 나는 정의했다.

-투명성 착각입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 걸어간다. 나의 장애를 대놓고 보는 사람이 있고, 내가 지나가면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주 오래.

투명성 착각이 아니라 아주 진하게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라 왔다.

나를 바라봐 주세요. 셀로판을 낀 불투명한 시선 말고
그냥... 투명하게 나를 바라봐주세요.

봉숭아 꽃.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 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시선집 『달밤』 (창비, 2004)

-엄마, 봉숭아꽃 물들이기 해주세요. 옆 집 희정이 손에 반달이 생겼어요 봉숭아꽃 반달이요. 너무 예뻤어요.

-엄마는 시간이 없어.

-엄마, 봉숭아 꽃을 물들이고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 대요.

-엄마 바쁜 거 알잖아.

봉숭아 물들이기가 혼자 하기 어려워서 졸랐을까? 아마 나는 엄마가 내 손을 어루만지면서 꽃잎 하나하나 짓이기며 거기서 나온 붉은빛을 내 작은 손톱 위에 하나씩 올려주는 그 풍경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봉숭아 물을 들이면 병마를 물리칠 수 있대요.

엄마는 소아마비로 살아가는 딸이 언젠가 똑바로 걸을 수 있는 희망이 있었나 보다. 소아마비가 병마가 될 수는 없는데, 엄마는 앞마당에 핀 봉숭아 꽃을 한 움큼 뜯어 오셨다.

그때 나는 내 손톱에 붉은 반달을 10개나 심었다.


붉은 봉숭아 꽃이 주황빛 반달이 되는 날, 달이 너무 예뻐서 소원을 빌었다.

달 빛 근처 손톱 다섯 개를 올려 보이며 소녀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첫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했을까... 병마를 물리쳐달라고 했을까...

사람들이 제 다리를 보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붉은 셀로판지를 끼고 그 셀로판지가 낡아서 주황빛으로 흐려질 때까지 나의 몸을 쳐다보았다.


손톱을 관리하고 피부를 관리하는 오로지 예뻐 보이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스무 살, 예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을 때 첫사랑이 도망갔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에 봉숭아 꽃 물들이기는 미신이고 속설임을 알아갈 때,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에 실패했다.

그리고 다가 온 남자는 맥주병을 깨고 그 깨진 파편으로 이마를 긋는, 그 피가 난자한 장면을 보여주고 장애인 여자와 결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왔다.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장애인을 사랑하는 그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하니,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도박과 거짓말이 난자한 세상이었다.

일을 하지 않고 내가 버는 수입에 기생하는 그 남자와 이별을 준비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을 가장 싫어하는 엄마가 가장 많이 반대했다.

-이모가 그러더라...’ 장애인이 이혼까지 해서 어떻게  산다냐’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옮겨와서 딸의 마음을 도려 낸 그 날,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을 하고 길을 걸어가는 나의 뒤통수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갔다.

-잘 사는지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그러게, 이혼했다네.


다행이다. 이제는 다리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더 큰 이야기가 산이 되어갈 때,  그들은 나의 다리 이야기 아니라 자기들은 잘 참고 살고 있다는 자위 끝에 도마 위에 올려놓은 나를 투사하며 [이혼녀 딱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들의 셀로판지 색이 무지개 색이 되어 시나리오가 되어갔다. 없던 일이 만들어지고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그들의 이야기대로 내 마음이 만들어질 때, 나는 흔들렸다. 한 번도 똑바로 대항하지 않은 그들과 싸우고 싶었다.

-이혼이 어때서요! 장애인은 이혼도 못 해요!


세상 모든 이혼녀들을 내 호위무사로 삼아서 험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과 싸우고 싶었다.

사람과 대면할 용기가 없던 그 두려움 쟁이가 이불속에서 우는 세월을 단단하게 묶어서 심리치료를 받았다.

그 용기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입으로 말하지 못한 것을 책 속 활자로 표현했다고 그 누가 비겁하다고 할 것인가? 오히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황 정미는 이혼녀]라는 것을 알았다.


신기하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향해 [이혼녀 딱지]를 붙이지 않았다.


상담을 하고, 에니어그램 전문가로 사람들을 공부할 때 알았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을 알아보고 이혼하고 싶은 사람은 이혼한 사람을 비방하는, 세상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책을 출간하고 유명해지니 사람들은 말했다.

-선생님, 저도 이혼할까 봐요...

워, 워... 조심스럽다.

-제가 이혼을 했다고 불행한 삶의 기준을 이혼으로 삼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과거도 불편했던 삶일 수 있어요.

 치유가 되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의지입니다만... 어떤 사람의 삶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평생 느끼고, 그 시선이 이야기가 만들어져 나의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했는데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면서 그들에게 건강한 말을 해주고 있으니 나는 달라졌다. 아니 더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노란색 셀로판지로 나를 보면, 내가 투명한 색으로 바꿔주면 되고, 붉은색 셀로판지로 나를 째려보면 내가 투명한 색이 되어 다가가면 된다.

나를 똑바로 보세요.
저는 이혼녀입니다.


몸이 불편한 나와 동행한 사람들이 차에서 내릴 때 말했다.

-빨리 오세요.  아... 선생님 목발 챙겨야 되죠. 가끔은 잊어요 선생님이 목발을 짚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기분이 묘하게 좋다.

이혼녀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선생님, 소개팅하시겠어요?

기분이 아주 좋다.

이제는 조금 더 소문을 내야겠다. 조금은 더 크게 소리를 내야겠다.

동네 사람들~!!
저는 장애인이면서 이혼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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