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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Oct 11. 2020

유별난 세포,Hoxy

착각 좀 하지 마.

활자 중독이라는 낭만적인 프레임이 현미경을 들고 글을 따지고 비춰보게 한다.

가끔은 돋보기를 한 글자에 멈추어 놓고 명탕점 코난처럼 사색에 빠진다.

다양한 자화상, 자서전, 일기, 편지, 교양소설을 읽으면서 숨어있는 개인의 심리학을 추적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는데,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충만한 기쁨이 이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 버렸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미 약혼자가 있던 여인 로테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베르테르는 괴로워하다가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살하는 장면, 나의 가슴이 뜨겁게 소용돌이쳤다. 그때 나는 죽고 싶었다.


유럽의 청년들 사이에 베르테르의 열풍이 불었다. 청년들은 소설에 묘사된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했고, 베르테르의 고뇌에 공감했다. 심지어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베르테르 효과-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문학작품인데, 우리는 그 안에서 나를 찾고 나에게 대비하고, 심지어 모방자살까지 한다는 것이다. 일부러 외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까?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야만 감성의 폭이 깊어지고 연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낭만으로 보이기도 할까?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줘/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줘/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줘/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말해줘-콜렉티브 소울 [샤인]이라는 노래 중에서

인생은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고 말했던 윤종신은 모든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루탄 가스에 도망가고, [금서]와 [금지곡]을 당당하게 내 것처럼 지닐 때 윤종신이 참여했던 015B의 텅 빈 거리에서는 내 노래였다.

내 곁에 머물러줘요 말을 했지만/수많은 아픔만을 남긴 채 떠나간 그대를/잊을 수는 없어요 기나긴 세월이 흘러도/싸늘한 밤바람 속에/그대 그리워 수화기를 들어보지만/또다시 끊어버리는 여린 가슴을/그댄 이젠 알 수 있나요-윤종신이 객원으로 참여한 015B [텅 빈 거리에서] 중에서


마치 베르테르처럼 따라 죽을 수 있고, 외로움의 극치를 찾아 들어가야만 사랑을 이해할 것 같고, 어려운 책을 논해야만 지식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때는 그랬다.


사람의 습관은 무섭다.

우울하면 심연의 깊이를 안겨주는 노래를 찾아서 튼다.

가끔은 착각을 한다.

가사를 쓴 사람의 마음이 나와 똑같을 것이라고.


사물과 대화하고, 관찰력이 뛰어 난 나는 장애인이다.

앉아서 생활하다 보면 소리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가히 반려견 [아랑이]가 천둥 치기 전에 미리 화장실 깊은 곳에 숨어 들어가 벌벌 떨고 있는 그 이상이다.

가끔은 그 능력이 지나쳐 마른침을 삼키는 그에게

-배고프세요? 식사할까요?

오지랖이다.


사물과 대화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내가 심리학을 공부했다.

잠깐의 [썸]으로 다가온 그 남자는 글을 쓰는 예술가다. 

그는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무기력한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해파리의 수준으로 살아가는, 멋대로 고동치고 살아가는" 문장을 알고 있었고, 부조리한 현실세계를 증오하는 [금서][금지곡]을 소유한 남자였다.

내 남자라고 생각했다.

착각이다.



에니어그램 머리형은 5번, 6번, 7번.

5번은 자기만의 세계에 갖춰 살지만 건조하다.

6번은 검증과 확인으로 착각을 해결한다.

문제는 에니어그램 7번이다. 왜곡된 시나리오가 착각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머리형이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창의적이며 기발한데, 문제는 에니어그램 7번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세포다.

Hoxy[혹시] 세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윌리엄이 자주 쓰는 혹시라는 단어를 영어로 표기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다.


문학의 깊이만큼, 음악의 깊이만큼 살을 파고 들어가 있는 착각 세포인 Hoxy는 생활을 하다 보면 선을 넘기는 오지랖을 베풀기도 하고, 선을 넘기는 사랑을 하고 있기도 한다.


혹시로 시작했던 경험이 역시로 넘어가면 나는 30년이 넘은 음악, 가사가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또 다른 착각을 찾아서 위로하기도 하고,

혹시로 시작했던 경험이 역시로 넘어가면 상처 받은 외톨이의 분노,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찾아 밑줄을 긋기도 한다.


Hoxy나 혼자만의 실존을 꾸리고 당당한 척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조금은 유별나다.

청각이 발달한 만큼, 촉각도 발달했을까?

테이블 아래에서 잠시 스쳐 간 발 끝에 그의 신발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면 이미 반이 넘어가 있었다.

테이블 위, 손이 안 닿는 거리에 있는 black pepper를 살포시 건네주는 센스라면 이미 반은 넘어갔다.


화룡점정, 강아지 상 눈매로 그윽하게 나만 바라보고 대화하면 나는 생각한다.

Hoxy!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이 시대 영향력 있는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였던 올리버 색슨은

전문적 식견과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는 환자들을 위로했는데,

환자로 나오는 사례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의 이야기이고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었다.

심리학을 공부한 상담사로 그 책을 접할 때는 몰랐다.

왜곡된 지각과, 변형된 지각의 극단성을 읽을 때 몰랐다.

착각이 지나치면 병이 되리라는 것을.


유명한 웹툰 저자는 Hoxy세포를 연애 세포라고 명명했다.

몇몇 심리학자는 착각은 인간의 공통적인 방어기제라고 했다.

알까?

지나친 착각으로 먹지 않았던 맥주캔이 늘어나고, 지나친 hoxy로 빨간 립스틱이 쌓여가는 것을.



평정심(平靜心), 평안(平安), 평화(平和).

단어들의 공통점은 平.

고요한 마음을 얻고 제대로 나를 직면해야 보이는 단어들의 공통점은 equal division이다.


이미 나는 수많은 Hoxy로 남자 경험을 했고, 구역질 나고 부조리한 존재를 경험했고, 가끔은 분노로 숨이 막히기도 했다.

이제 나는 내 마음의 영역을 동등하게 나눌 것이다.

혹시와 역시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는 근시안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루 24 시간을 분배하고, 지나침 없는 마음을 나누며, 전통적 시대가 안겨 준 이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외로움을 대신하는 와인과 맥주가 숙면을 위한 도구로 바뀌어 갈 때, 맥주 캔이 줄고 와인 잔에 먼지가 쌓이고 있다.

잠이 안 오는 날, 맥주 한 캔 따고 슈트 빨 뽐내는 박보검이 속삭이면, 풀린 나의 눈이 잠시 우울모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제 나의 입술에서 툭 튀어나온다.

웃음기 가득한 냉소적인 어조로 나에게 말한다.

착각 좀 하지 마!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옆에 없다.

최수종과 션과 같은 남편은 옆에 없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Equal division.


놀라지 마라, 감성의 대표 사비나가 이성적으로 변해도, 놀라지 마라.

틈을 주지 마라, 이성적인 내가 Hoxy로 다가갈지 모르니.


나는 좀... 유별나다.

출처;Dem kho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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