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bina Sep 20. 2020

나는 개인 거지.

도대체 왜, 언덕을, 털은? 눈은?

개다운 기색이 무얼까?

주인의 환대를 사기 위해 꼬리를 살랑대며 세상 불쌍한 눈으로 먹을 것을 요구하는 가끔은 그 불쌍한 눈을 거절할 수 없어 품 안에 넣어 다니고 싶은, 그 사랑스러운 행위가 개의 기색일까?


가을바람이 살랑대니 도저히 집에 있기 힘들었다.

바람을 느끼며 카레이서가 된 듯 거칠게 차를 몰고 차의 호흡이 딸릴 때 찾았다.

제자들과 차 선루프를 열어놓고 경사진 언덕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바이킹 뒷자리에서나 느낀다는 오줌 지리는 그 쾌감이 있는 장소를 찾았다.

그 언덕에서

이제는 선루프 따위 없는 작은 애마 레이의 창문을 다 열어놓고 가을 음악을, 가을 책을 누리고 있었다.


경사라는 것이, 함박눈이 지나쳐 길이 꽁꽁 얼어버리면 그 경사진 비탈길을 먼저 올라가 있는 선도부가 던져준 밧줄을 목숨줄인 양 부여잡고 겨우 올라갈 수 있는 도전의식 가득해야 올라갈 수 있는 힘든 코스인데,


경사진 언덕길을 삽살개 한 마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개다운 기색이 없었다.

엉킨 털은 길거리 개인 것을 암시하고, 얼굴을 감싸고 있는 긴 털은 당당한지 불쌍한지 알 수 없도록 그놈의 눈을 가려놓았다.

얼핏 보면 굶주려 있고 얼핏 보면 목말라 헉헉 대는 삽살개가 내 차로 걸어오고 있었다.

‘삽살개는 비싼 개인데... 주인이 없나’

가을 음악을 끄고 책의 구절구절 끄적거렸던 펜을 놓칠 만큼 삽살개의 외모가 신경 쓰였다.

가방을 뒤져서 찾은 호두 몇 알을 던지고 불쌍한 삽살개의 긴장을 풀어야 했다.

“이리 와 봐, 엄마는? 너 혼자니?”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겠지.

연신 대화를 걸어본다.

“물 줄까?”

다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을 따뜻한 손으로 비벼가며 물기를 만들어 손을 내밀었다.

“옳지, 옳지, 목말랐구나 먹어, 먹어...”

주인이 없는 개인 거지.

아니, 주인이 버린 개인 거지

며칠을 굶었을 거야.

교감했을 거야 우린,  그제야 긴 털을 들어 눈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아... 넌 눈도 예쁘구나”


고민했다. 차에 실어서 데리고 갈까?

내가 몸을 만지면 물지는 않을까?

“차에 탈래?”

요동하지 않았다.

목에 걸릴까 호두 몇 알 이로 아작을 내고 부드러운 여물로 만들어 손바닥 위에 놓아주자

따뜻한 혀로 내 손바닥 위에 있는 짓이긴 호두를 핥고 있었다.


마음을 다 연 거지. 교감은 끝난 거지.

엉킨 털을 손가락 마디마디로 정리해주고 쓰다듬어줄 때, 부른다. 누가 부른다.


“진순아!”

나는 자명한 ‘개’과 인간이다. 내 안의 ‘개’를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점잔을 빼다가도 좋아하는 것 앞에 서면 사정없이 꼬리를 흔들어 들통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얼굴 근처를 서성인다. 연신 혀를 내밀어 맛을 보고(키스가 아니다), 날름날름 핥고(진짜다), 물어뜯고, 상대의 심연에 다가가고 싶어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얼굴을 들여다본다. 먼 곳에서 그가 돌아오면 개처럼 펄쩍 뛰어 반긴다. 나는 개들이 반가우면 왜 앞발을 들어 그의 몸에 올라타는지, 왜 꼬리를 흔드는지 안다. 왜 먼 곳을 향해 하울링을 하는지, 왜 당신이 옆에 있어야 마음을 놓는지, (...)안다.-<<모월모일>>박연준 산문집
나는 개인 거지

어릴 때도 그랬다.

개를 보면 반색을 하고, 그 개가 집을 잃어버린 개라면 목발이 무기로 보이지 않아야 내게로 올 수 있는 듯, 목발 따위 던져버리고 땅에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연신 대화를 했다.

“집이 없니? 엄마는? 배 고프구나... 이리 와 봐”


어른이 돼도 그랬다.

운전하고 가다가 목줄이 없는 개를 보면 차를 정차하고 숨어서 지켜보다 5분이 흘러도 10분이 흘러도 방황하고 있는 개라면 차를 몰고 간다.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불렀다.

“집이 없니? 엄마는? 배고프니?”

알아들을 수 없어도 개는 본다. 주인이 있다면 휑 소리가 바람이 되어 가버리지만, 주인이 없다면 그 개는 멈춘다.

며칠을 굶은 거지...

그렇게 가방 뒤져서 나온 빵이라도 주면 다행이다.


교회 갈 시간인데, 약속 시간이 이미 지나가는 데,

하얀 털이 누렇게 되고, 긴 털이 엉겨 붙은 길 잃은 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병인 거지

불쌍한 사람, 불쌍한 개

고개 숙인 사람, 굶주린 개,

기색을 어떻게 아는데, 사람의 속을 어떻게 알며 주인 없는 개의 특징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더만,

왜 그렇게 앞을 안 보고 옆만 보는 건지...


병인 거지.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히려 심리상담사가 되어 버린 역설적인 환경이 오히려 다행이다.

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못 박아주는 수많은 시간이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병이 낫는 걸까.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지도만 보인다.

주인 있어도 털이 누렇게 변할 수 있고, 고개 숙인 사람 손 잡아주어도 영영 나를 찾지 않기도 하잖아.

옆 길로 새지 말자.

그만 서툴러도 돼.




“진순아!”

개보다 걸음이 더 느린 할아버지는 경사진 언덕을 그제야 올라왔는지, 헉헉대며 오히려 삽살개를 나무란다.

“먼저 가지 말랬지!”


진순이는 떠났다. 할아버지에게 꼬리를 살랑대며.


개다운 기색은 뭘까?

슬프고 어려운 사람의 기색은 뭘까?

이제는

그만 속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