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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04. 2023

왜 경주를 걸었나.

스물 아홉,

4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기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의 기억과 그때의 현실은 엄연히 다른 시간이기 때문. 기억은 왜곡을 수반하기에 지금 나의 기억과 당시의 나는 다를 수도 있다.

재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누군가 내게 가장 먼저 물어볼 것 같은 질문은 이거였다.


왜, 당신은 경주를 걸었나요?


경주를 걷다 시리즈의 첫 글, 내가 경주를 걷기 시작한 건에선 짧게 이야기 했었지만 나에겐 쉼이 필요했고 정리의 시간이 필요했다. 걷기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방법이었다. 기왕 걸을거 그냥 무작정 걷는것 보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경주의 다양한 곳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렇게 경주를 걷기 시작했고 문화재마다, 마을마다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보이지 않아 떠났던 길에서 길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4년 동안 경주를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걷는게 좋았다. 걸었던 길을 또 다시 걸어도 새롭게 느껴졌다. 당연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마주하게 되는 시간은 지금까지 온 적 없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시간이었으니까.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주의 다양한 공간들을 만나면서 시간의 도시, 경주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문화재나 자연 풍경 위주로 촬영을 했지만 지금은 마을의 모습, 동네 골목길을 기록해 둔다. 문화재는 그대로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생각보다 빨리 바뀌기 때문이다. 재실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내가 찍은 사진들은 역사가 되었고 기록이 되었다. 동천동을 다니던 무궁화호의 모습은 이제는 볼 수 없다. 그저 한 장의 사진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추억이 된다. 사진이 가진 힘이다.


2021년 12월 27일. 마지막으로 경주시내를 달리던 무궁화호.


 나를 위한 시간을 생각하며 걸었던 길이 누군가의 시간을 기록하는 길이 되었고 앞으로 추억을 만들어 갈 길이 되었다. 앞으로도 길위에 차곡차곡 쌓여갈 시간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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