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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5. 2023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나가는 재실들

적응은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필요하다.

재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방치된, 그리고 사라져 가는 재실을 보며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목조 건축에 기와지붕을 사용한 과거의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이기에 지속적인 관리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재실의 유지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시간과 보수 비용은 비례하는데, 실제로 나중에 보수를 하려고 해도 비용이 엄두가 나지 않거나 보수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더 나아서 방치되는 곳들도 있는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기존 양식은 유지하되, 오래 보전할 수 있도록 상황에 맞는 유지, 보수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차원에서 강동면 호명리에 있는 술선재의 사례는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망기당 조한보를 기리는 공간으로 1924년 처음 세워졌다. 설립 연대만 보면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강점기지만, 지금 시점으로 세워진지 이제 1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설립 연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조한보는 15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과거에 합격 후 성균관의 유생으로서 유학을 공부하다, 성균관의 비리를 혁파하고자 함께 공부하던 유생들과 동맹 휴학을 주도하다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는 처분을 받고 말았다. 이에 크게 상심한 조한보는 지금의 호명리에 은거하여 학문을 연구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이름난 유학자가 된 조한보는 당대 또 다른 이름난 학자인 회재 이언적과의 문답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술선재는 이러한 조한보를 기리는 공간이다. 처음 이름은 호계서당이었는데 지금은 서당의 기능은 하지 않고 제를 모시는 공간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호명리 술선재


술선재 출입문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건물은 창녕조씨 망기당 문중의 재실로서 조상님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입니다. 이 속에는 재물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보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타인께서는 건물 내부에 무단으로 출입하시지 마시고, 건물 내 외부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절대 금해주십시오.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건물을 둘러싼 담의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이런 재실들의 대부분은 담 뒷부분은 일부가 개방되어 있거나, 별도의 출입문이 있어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마음먹으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재실은 기본적으로 해당 문중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모시는 공간이다. 그래서 문이 열려있어 누구나 들어와도 된다는 표시가 없으면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어차피 들어가서 보나 밖에서 사진기로 줌을 당겨 보나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들어가지 말라고,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는데 도둑처럼 몰래 들어가서 볼 이유가 있는가? 

아마 전국에 많은 재실이 굳게 문을 닫은 것도 안내문 내용처럼 물건을 훔쳐가거나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런 면에서 매우 아쉽다. 문중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에서 개방을 했는데 그중 몇몇 불손한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행동한 이유로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니 말이다.



돌담 너머로 본 술선재의 모습은 기존 전각에다 유리문을 덧댄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기단석도 시멘트로 보수를 한 모습이었다. 옛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유지를 하려고 하는 문중의 노력에 감사했다. 사유재산이지만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인 만큼 지금을,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테니. 


이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재실을 유지하는 방법은 나는 매우 찬성한다. 다만 그 역시도 결국 돈의 문제이기에 원활하게 유지하는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꼭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지속성을 갖고 이어올 수 있는 것은 유지할 건 유지하고 또 새롭게 보수하는 건 오늘의 기준으로 보수를 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도 역사의 한 방법이고 기록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미래세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혼재되어 있는 것도 하나의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단, 완전히 상상으로 창조해내는 것, 추정에 의해 근거 없는 해석으로 복원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것은 또 다른 왜곡이니까) 각자만의 방식으로,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적응해 나가는 것. 그것 역시도 역사가 되고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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