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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16. 2023

과거의 공간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

요즘 ‘문화재 활용’ 사업이 곳곳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순히 문화재를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재가 가진 의미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딱딱하고 고전적인 의미의 문화재에서 벗어나 문화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기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문화재, 특히 박물관이 아닌 야외에 있는 노출문화재는 단지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접근이 허락된다면 손으로 만져도 보고, 앉아도 보면서 문화재를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과거의 시간과 교감이다.


비슷한 측면에서 경주 지역에 산재해 있는 재실을 탐구하고, 더 나아가 이곳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꿈꾸는 것은 바로 위로의 공간이다. 특히 나와 같은 20대 후반~30대 초반 청년세대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세대가 바로 이 두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재해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가능성이 보여야 오늘을 이겨내고 내일을 꿈꿀 수 있는데 두 세대에게 미래는 밝은 빛이 아닌 먹구름이 이어질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청년세대가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기에. 어떤 기분인지 나 역시도 너무 잘 알기에. 아직 젊다고. 실패해도 된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해보라는 조언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겠지만 오히려 고통이다. 삶의 목적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도전이 가져다 줄 변화는 희망이 아닌 절망을 생각하게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배를 든든히 채워야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엔 무기력한 것처럼 보여 의욕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안의 나와 싸운다. 이래선 안 된다고. 지금 이렇게 지내서는 안된다고. 계속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정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더 작아지게, 그리고 점점 더 사회로부터 나를 격리시킨다.


그럴수록 잘 쉬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불안하지 않도록.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는 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친구보다 영어를 더 빨리 배워야 하고 친구보다 성적이 더 뛰어나야 하고 친구보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친구보다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하고 친구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왜? 그래야 내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안정적인 삶을 사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인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항상 승리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친구 한 명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나아지는가? 아니다. 나를 이긴 다른 경쟁자, 그를 이긴 또 다른 경쟁자. 그러다 보면 나는 보이지도 않는 저 어딘가의 점처럼 느껴진다.


세상 유일한 나의 시간과 나의 삶을 다른 기준에 매길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니 어떤 사회, 경제 체제를 떠나 지금까지 지나온 역사의 시간을 살펴보아도 가치가 높게 매겨지는 것은 희귀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즉 수요 공급 측면에서 공급이 적을수록 수요는 많아지고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대로 우리에게 대입해 보면 우리는 모두 세상 유일한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고귀하다. 나의 삶, 나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누구도 나의 삶과 똑같은, 나의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차이를 만드는 것도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다. 내가 나의 가치를 찾아나가고 만들어가는 일. 그것은 내가 나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 가능하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눈 감는 그날 까지도 나에 대해 알아가고 또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 삶이 힘들 때 다른 이로부터의 위로가 큰 힘이 되지만, 원동력이 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아껴주는 것. 괜찮다는 위로다. 내가 먼저 나에게 위로를 건네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쉽지 않다. 더군다나 힘겨운 시간에 있는 이들에겐 더더욱. 그래서 공간이 가진 힘을 활용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역사는 시간의 흔적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 삶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인물들은 모두 그 나름의 위기를,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낸 사람들이다. 재실도 마찬가지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고, 후대 사람들이 본받았으면 좋을 그런 삶을 살았던 이들의 행적이 깃든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며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 그러면서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 시간을 간직한 공간만이 가능한 힘이다. 겉으로 아무리 비슷하게 지었다고 해도 시간이 담겨 있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천지차이다.


특별히 무슨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아도 북적북적하게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도 공간이 가진 의미, 그리고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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