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의 추억

나의 종교

by 류지숙




동네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좋은 애기를 많이 해주시는 언니가 있다. 대학교에 다니는 딸 한 명과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 아들을 자녀로 두고 계시다. 언니랑 대화를 나누면 홀리(holy)한 기운이 언니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심지어 종교가 없는 내 입에서 "아멘"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연말에 언니를 만나고 나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실함이 내심 부러웠다. 나도 절대자에게 기대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그 만남을 계기로 나의 종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처음 절에 갔던 기억은 7살 무렵, 내가 살 던 동네의 한 허름한 건물 꼭대기 층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문이 있었는데 문 안쪽에는 사람이 꽉 들어차 있어 문을 닫을 수 조차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곳을 포교당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불교와의 만남이었다.


6학년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니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부모님 뿐 아니라 남동생까지 일요일이면 하루를 온종일 교회에서 보내곤 했다.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친구무리들은 모두 그 교회를 다녔다. "너도 우리랑 같이 교회에 가자 그러면 일요일 하루종일 같이 놀 수 있어"라는 말에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갔다. 그 교회는 지금도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라고 생각지 못하게 큰 강당에서 했다. 그리고 그 강당은 놀랍도록 꽉 차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어색함을 숨기고 껴앉아 설교를 듣고 있는데 하나둘씩 일어나 중얼중얼 거리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심지어 이곳저곳에서 통곡의 소리가 나기도 했다. 너무 무서웠지만 무서운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게 교회와의 첫 만남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친구와의 관계에서 짝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이 친구가 너무 좋은데 왜 이 친구는 나만 좋아하지 않는 걸까? 이런 류의 마음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내 친구는 성당엘 다녔다. 목소리도 고우시고 마음씨도 고우신 친구의 어머님이 친구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당에 다녀서 내 친구는 모태신앙이라고 했다. 그 친구를 따라갔던 성당은 천장이 높았고 신부님이 입고 계신 사제복은 너무나도 희고 고왔다. 신부님이 친구 입에 넣어주는 하얀 떡의 맛이 궁금했다. 친구는 삼키지 않고 입 안에 숨겨와 살짝 떼어 내 입속에 넣어줬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내게 허락되지 않은 무언갈 먹은 것 같았다. 그게 성당과의 첫 만남이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나서였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른 곳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직지사로 향했다. 큰 스님이 계셨던 그 절에 가면 이 마음이 사라질까 싶었다.

겨울의 직지사는 고요했고 차분했다. 템플 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스님께서 차 한 잔을 내어 주셨다. 그분이 가지고 계신 수행자의 기운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별말씀 하시지도 않으셨더랬다.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새벽 3시 어김없이 천지를 깨우는 종소리에 몸을 일으켜 대웅전으로 향했다. 큰 스님이 정좌세를 하고 앉아계셨다. 그 뒷모습에 그냥 눈물이 났다. 나도 수행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럼 나는 불교인가?

성당이 주는 성스러움이 좋은데 그럼 나는 가톨릭인가?

유대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그럼 나는 유대인인가?


나의 근원은 내 어머니이고, 내 할머니이다. 내가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행하는 모든 행동에 나의 어머니가 들어있다.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있고 엄마가 해주셨던 말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다. 우리 엄마의 음식과 말들은 외할머니에게서 왔다. 내 기억 속에 외할머니는 아침에 눈을 뜨시면 가장 먼저 깨끗한 물을 한 대접 떠와 자식들 이름 하나하나 읊조리며 자식들이 무탈하길 기도하셨다.

할머니가 믿는 신은 누구인가요? 물어본 적은 없다. 절에 다니시니 부처님께 기도하시나 보다 짐작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외할머니가 믿었던 종교는 토속신앙이라 불릴 수도 있겠다.


나에게 종교란 내 어머니이자, 정화수이자, 지금 이 순간이다. 죽어서 천국을 가길 빌면 뭐 할 것인가. 이미 죽었는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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