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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의 함정

by 김강사

노트북 가장자리가 깨져있다.

몇 주 전 아일랜드 식탁에서 노트북을 떨어트린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파손이 된 모양이다.

노트북을 떨어트렸던 그날은 사건 사고 없는 편안한 날이었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날은 평범할 수 있어 감사한 하루였다.

그런데 오늘 노트북이 파손된 것을 발견한 이후로 그날의 기억은 짜증스러움으로 변했다.

그리고 파손을 발견한 오늘도 언짢은 날이 되었다.


종이에 베인 상처가 알지 못했을 땐 아프지 않았는데, 상처를 보고 난 후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인지하지 못했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던 한낱 스쳐 지나가는 일이지만 알고 난 후 내 평범한 하루를 흔드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사건들.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챌 필요도 기억할 필요도 없다. 신경 쓸 것도 많고 기억해야 할 것도 차고 넘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때로는 무심함도 필요하다. 인지를 게을리한다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어떤 이조차도 인지의 함정에 빠져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과도한 인지에서 벗어나 과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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