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조의 밤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의 감동 이후 우연히 백두대간 21주년 기념 영화제에서198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로렌조의 밤>을 발견했다. 40대였던 그들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땠을까? 주저함 없이 영화관을 찾았다.
<로렌조의 밤>은 유성의 밤이란 의미로, 투스카니 사람들은 이 밤에 유성 하나에 하나의 소원을 빈다. 그리고 어느 로렌조의 밤. 체칠리아가 어린 소녀였던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소녀의 눈으로 본 세상과 그녀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시간들은 전쟁 중의 잔혹함과 절망이라는 현실이 동화처럼 그려지며, 가끔 현실은 마술적 시간으로 바뀌어 판타지적 이미지로 보여진다. 두려움과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엄마가 가르쳐준 주술은 늘 그 현실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들판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들판에 숨겨져있는 대피처에서 나온 한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결혼식. 전쟁중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랑도 일상도 진행 중이다.
1944년 전쟁이 한창이던 유럽. 독일군이 점령한 이탈리아의 산마르띠노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미군들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오늘밤 마을을 폭격할 예정이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성당으로 대피하라는 독일군의 명령을 듣게 된다. 한 무리는 성당을 선택하고, 한 무리는 독일군을 믿지 않고 스스로 미군들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밤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은 마을을 떠나 근처에서 자신들의 마을이 폭격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수백년 넘게 이어 살아왔고, 태어나고 자라났던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이 곧 사라진다는 것 만큼 끔찍한 공포가 있을까?
폭격 소리와 함께, 그들 손에 들려있는, 목에 걸려있는 축적된 시간만큼 묵직해 보이는 열쇠는 허공으로 떨어져 나간다. 그들의 삶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 여정을 이끌고 있는 노인 갈바노는 혼잣말을 던지며 눈물을 훔친다. "우리의 장미같은 산마르띠노는 사라진거야"
순간 우리는 전쟁도 아닌데, 나의 삶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을 그리 쉽게 날려 버리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삶은 지켜나가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마음에 들어온다.
미군을 찾아 나가는 그들의 여정은 계속된다. 검정색 옷으로 온몸을 어둠 속에 감추고 시작된 여정이지만, 다음날 그들은 초록의 산과 들판 속에서 마치 피크닉을 나온 듯이 화사한 색의 옷차림으로 일상을 이어가며, 희망을 찾아 나간다. 위험한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어느새 그들 안에는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아련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오래전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밀밭에서 파시스트와의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잔혹함 속에서 그들은 또 서로를 잃고 죽음 가까이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6살이었던 어린 소녀 체칠리아는 지금 자신의 아이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얼마나 정확한지는 몰라도 사실인 사실을...그리고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진짜 이야기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한단다. "
동화 같은 전쟁 속 사람들의 이야기! 타비아니 형재 감독은 전쟁의 참혹함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늘과 땅을 뒤덮는 폭격과 포화, 수백명의 죽음 속에서가 아닌, 마을과 내 집과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일상을 지켜나가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해피앤딩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