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속의 낙관과 우울함 속의 코믹함이 만들어 내는 희망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by 룰라

유럽 영화 감독 중 좋아하는 한명은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다. 처음에는 이 낯선 이름을 어찌나 여러번 반복해서 불러봤던지, 이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세계적인 거장인 그의 영화는 대중적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만난 영화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1989>에 이어 <과거가 없는 남자 2002>, <르아브르 2011>, <어둠은 걷히고 1996> 이다.


그는 주로 소외된 계층, 실업자, 노동자, 이민자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매서운 추위 속에 독한 보드카를 앞에 두고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그의 주인공들은 우울하고 비참하고 비관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다. 하지만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그들의 삶에 태연하고 관대하게 때로는 동화처럼 희망을 만들어 준다. 그야 말로 겉으로는 차갑지만 그 깊은 속에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이 있는 휴머니스트이다. 그의 영화는 무성흑백영화의 아련하면서도 단순한 느낌과 현대적 영화 기법을 적절히 담고 있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만들어줘, 이러한 그의 휴머니티는 영화 관람 후 마음 속에 더 오래 남는 지도 모른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는 실제로 핀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즈 밴드가 직접 출연한다. 그들은 슬리피 슬리퍼스(Sleepy Sleepers) 라는 무명의 밴드였는데, 카우리스마키 감독을 만나고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즈로 변신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과장되게 뾰족한 머리스타일과 뾰족 구두, 검정색 양복과 모피 코트를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실소를 자아낸다. 툰드라 지역의 북유럽 민요를 연주하는 밴드의 실력은 형편없고, 음악을 들은 에이전시는 그들에게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곳인 미국행을 제안한다. 매니저는 미국인으로 구성된 최고의 밴드라는 거짓말로 초청권을 따내 뉴욕으로 향하고 그들의 여정은 시작된다. 하지만 뉴욕에서 만난 에이전시는 지금은 락앤롤의 시대이고, 그들의 음악은 멕시코에나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자신의 사촌 결혼식에서 연주할 밴드자리를 소개해 준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북유럽에서 뉴욕으로 다시 멕시코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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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메리카에 속하기 위해 영어를 습득하고, 책으로 락앤롤을 배우며 여정 중 여러 바와 클럽에서 그들의 음악이 아닌 아메리카의 음악을 연주하지만, 그 곳에는 그들이 설 곳은 없다. 거대 자본과 상업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를 비판하는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그 논리를 만들고 지배하는 아메리카의 모습을 그들 여정 속 풍경으로 보여준다. 황량한 들판과 공장들의 모습, 따뜻함은 찾아볼 수 없는 아메리카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매니저의 자본주의적 권력과 횡포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심각하지 않다. 비관속의 낙관과 우울함 속의 코믹한 요소들이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미국에서 왜 인기가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지나치게 창백한 얼굴떄문이라며, '비치보이스' 처럼 되기 위해 바닷가에 한줄로 누워서 썬탠을 하는 모습은 흡사 모래 사장위의 펭귄 들처럼 보여 웃음을 자아낸다. 갓 태어난 아기도, 심지어 개도 똑같이 뾰족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는 모습은 그들에게 단순한 외형 꾸미기 보다는 그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그들이 연주했던 폴카 음악처럼 말이다. 결국 그들은 멕시코에 결혼식날 당일 도착한다. 이번에는 락앤롤이 아닌 그들의 음악을 연주한다. 북유럽부터 나무관에 함께 싣고 온 온몸이 얼어붙은 기타 연주자도 보드카의 진한 술에 깨어나 연주에 함께한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은 멕시코 가요 톱10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것이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 스타일의 해피엔딩이다.

헬싱키에는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이 운영하는 레스토랑&펍이 있다. 헬싱키에 갈때마다 혹시나 감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찾아가는 곳이다. 이름은 ZETOR!

핀란드의 북쪽 라플란지역에는 아키카우리스마키 감독이 만든 영화제가 매해 6월에 열린다. Midnight Sun Film Festival 이다. 백야의 시간 속에서 밤새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제로, 가장 가고 싶은 영화제 중 하나이다. 언젠가 꼭 백야 속 영화 감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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