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 [의성식당]
이제는 식당을 접었지만, 아마 내가 다시 식당을 하게 된다면 그려지는 모습이 있다. 일단 메뉴가 단출할 것 - 내가 자신 있는 메뉴로 시작해서 매일 만들며 더 맛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싶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단골인 곳 - 심야 식당처럼 주변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주는 공간으로 음식을 파는 것 이외에 마음도 나눌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당연히 대박을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작은 공간으로 꾸미게 될 것 같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식당을 운영해보면 작은 규모로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식당을 꾸리는 것은 대단한 공력과 체력, 용기를 갖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도 '이택희의 맛따라기' 소개 글을 보고 찾아 나선 의성식당. 보라매 공원 옆에 자리하고 있어 집에서 가까운 지라 부담 없이, 그리고 사실 큰 기대 없이 갔었다. 의성식당은 내가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 식당의 원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직접 쑤어 내는 순도 100%의 묵과 홍어 무침 등 몇 가지 메뉴를 선보였고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그 공간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주인 어르신이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는 느낌이었다.
메밀 접시 묵과 수제비를 주문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 같은 상차림이다. '이택희의 맛따라기' 기사에 보면 의성에서 농사짓는 남동생이 직접 키운 메밀로 쑨 메밀묵에 김치, 오이, 김가루를 함께 담아 준다. 요즘 젊은 세대도 묵을 좋아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어린 시절 동네를 돌며 '메밀묵, 찹쌀떡'을 팔던 아저씨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있으면 먹는 음식인 것이다. 사실 김치와 곁들여 먹는 묵은 메밀묵이든 도토리묵이든 꽤나 좋아한다.
쑥을 넣어 반죽한 쑥 수제비도 특이한 맛이었다. 시골집 할머니가 해주시는, 그야말로 고향의 맛이랄까. 기름기 없고 화장기 없다. 그래도 몇십 년 전 시골이든 도시든 어디에나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려운 '인심'이 묻어나는 맛이다.
우리가 방문한 때가 마침 점심 드실 때였는지 순두부를 해 드시면서 우리에게도 한 그릇씩 건네주셨다. 아, 배부른데... 하지만 순두부에 간장 담아서 맛을 보았다.
식당을 나와 걸으면서 문득 시간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맛보기 어려운 순도 높은 음식과 옛 기억을 떠올리는 공간. 모두가 만족할 식당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게는 정겨운 곳이라 가끔씩 시간 내어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