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1)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겁내지 않는 편이어서 '습관성 창업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과연 식당을 운영해보겠다고 한 것은 무모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신선한 회를 스마트폰으로 주문/배달하는 서비스 '미친물고기' 운영 공식 7개월, 비공식 일 년째... 우리 팀들은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 협력사 사장님들과 어느 정도 손발을 맞췄다고는 해도 우리가, 혹은 고객이 원하는 정도의 서비스를 요청드리기는 어려웠다. 생선회를 뜨고 해산물을 고르는 안목은 뛰어나신 분들이니 사실, 그것으로 더 바라는 것도 욕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늘 좀 더 깔끔한 서비스가 되고 싶은데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덧붙여, 꾸준히 사용자가 늘고 주문, 재주문이 오고 있지만 '팀'을 운영하기에는 버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저 수수료일 뿐이니 거래 금액이 제법 된다 해도 이런 정도의 성장률로는 BEP를 달성하는데 하세월이겠다 싶었다. 일반 가정 대상으로 해산물 식재료를 제공하는 키친 사업도 구상해보고, 심지어 우리가 배달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식당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 우리 팀 중에 식당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작정 책 읽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 찾아가 얘기 듣고 고민하며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어차피 미친물고기의 모토가 신선한 해산물로, 깔끔한 서비스로 사람들의 '회식 생활'을 더욱 즐겁게 하자는 것이므로 식당에서 직접 고객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기쁘고 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됐다.
어찌어찌 자리를 찾고 모르는 가운데 하나씩 장비를 꾸려 식당을 오픈했다.
책에 보면 '오픈 빨'이라는 게 있다던 데 여의도에 문을 연 미친물고기 백스테이지는 과할 만큼의 '오픈 빨' 이익을 보았다.
개업한지 이틀째 방문했던 마냐님, 워낙 맛집에 일가견 있으신 분이니 그분이 쓰신 후기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https://brunch.co.kr/@manya/60)
지난 열흘 동안 정신없이 보냈다. 낮에는 해물라면 끓이고 국수 삶으며 밀려오는 주문 쳐내기에 정신이 없었고 저녁에도 예약이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정도였다. 과분한 관심 덕에 실전 경험을 빡세게 쌓으며 이런저런 것들을 느꼈다.
(1) 과연 식당 운영은 참으로 어렵고 고된 일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 반, 11시까지 이어지는 '노동'에 집에 갈 때쯤이면 녹초가 되었다. 이제까지 남이 해 준 밥을 먹고 다닌 은혜를 이렇게 죽기 전에 갚고 가는가 보다 하면서도,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손 발이 저릴 정도로 부어올랐다. 매일 매일을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던 때를 떠올렸다. 걷고 걷고 또 걸어도 산길, 저녁에 대피소에 도착해서 누우면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그 기억, 아침에 일어나면 얼마간 발걸음 떼기 어려울 정도로 종아리가 아팠던, 그때 기억 그대로다. 지리산 종주는 2박 3일로 끝나지만, 당분간 나의 미친물고기 종주는 계속될 것이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2) 어떤 손님은 값이 싸다고 하고, 누구는 비싸다고 하고, 누구는 싱겁다고 하고, 한 편에서는 맛있다고 하고, 또 반찬이 없다고 불만이고, 해물라면 국물 맛이 일품이라 칭찬하고, 접시가 작다고 하고, 양이 적다고 한다. 가능하면 손님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려 한다. 그때 그때 받아들이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렇게 아직은 우왕좌왕이다.
이번 주말 모처럼 쉬면서 과연, 나는 어떤 식당을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봤다. 생선회와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친구 선후배들과 모여 즐겁게 한 잔 나누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가 요리 전문가도 아니니 대단한 메뉴를 제공할 수는 없고 노량진의 싱싱한 해산물 퀄리티에 기대어 살짝 데치고 굽고 조리고 튀기는 것으로 생선회에 곁들이는 다양한 맛을 선사할 뿐이다. 수조를 두지 않고 회를 떠 오는 대신 일반 식당에 비해 이윤이 박한 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백스테이지는 그 모든 것을 테스트하고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연 것이니 말이다.
오픈하고 예약이 만석이 되어 하루 이틀, 와 이러다가 정말 대박이 나는 거 아닌가도 생각해봤지만, 하루 만에 그 생각은 접었다. 테이블 4개짜리 식당으로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친물고기' 앱 서비스가 천천히 성장해도 굶어 죽지 않을 기반만 다지면 그것으로 되었다. 큰 욕심 갖지 말고, 조급하지 말고 원래 생각했던 백스테이지의 역할에 집중하자 다짐해본다.
(3) 백스테이지가 둥지를 튼 라이프오피스텔 지하상가는 오래된 오피스타운이다. 대개 점심 손님은 63 빌딩과 주변 사무실의 직장인들. 오전 11시 반 정도부터 손님이 몰려들 때는 정신이 없다. 어떤 날은 정신없이 몰리고 어떤 날은 띄엄띄엄 꾸준하다. 점심이 끝나고 설거지를 마치면 2시 반에서 3시. 그 시간에 꼭 물을 팔팔 끓여 이미 설거지를 마친 수저와 물컵을 뜨거운 물에 소독한다. 가끔 식초도 넣는다.
설거지를 하나라도 줄여야 하지만, 그래도 수저와 물컵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깨끗이 닦아 높으면 뭔가 뿌듯하다. 해산물 식당에서 최소한 식기와 물컵은 냄새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나의 고집이기 때문이다. 그거 안 하면 약 20분 정도는 더 쉴 수 있을 테지만, 그래도 내게는 열탕 소독이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겠다는 내 스스로의 다짐이다.
(4) 초보의 식당 운영은 정말 어설프다. 며칠간은 밥의 양을 조절 못해서 연어덮밥과 회비빔밥을 못 팔았고 어떤 날은 같은 상가에 있는 '평범 해장국'에 가서 밥을 꾸어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시골의 소위 '촌 인심'을 잘 모르고 살았는데 지하상가에 있는 식당들은 옹기종기 마치 촌마을 같다. 그래서 조금 맛이 덜해도 같은 상가에 있는 것을 팔아주는 암묵적인 인심이 살아있다. 내게는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다.
(5) 개업 첫날, 고맙게도 지인들이 식당 오픈을 응원하러 와주었다. 그러나 주방과 홀이 손발을 맞추지 못해 버벅거리다 보니 불은 라면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너무 싱거운 매운탕, 마늘이 조금 덜 익은 전복마늘구이, 살짝 더 익혀진 아나고튀김을 먹고도 무모한 도전을 응원해준 모든 분들 - 너무 너무 고맙다. 꼭 다시 오셔서 정상을 찾은 맛을 다시 보셨으면...
느낀 점이 열 가지는 있었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조금 여유가 생겨 백스테이지를 찾는 손님들과 눈인사도 나누고, 반가운 얘기들도 건넬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