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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Sep 13. 2020

인생의 페이소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의 유혹일 것이다.’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순간에 굳이 리마 해변에서 생을 마감하는 배경에 쓰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비롯한 로맹 가리의 단편선은 세상 속에 내던져진 인간에게서 희망이라는 불씨를 발견하는 체관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설명이 필요할 뿐.’ 삶이라는 고통을 선고받은 우리는 어떠한 동력으로 삶을 영유하게 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마주하는 것은 시시한 인간들과 명분 없는 매일의 전투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른 출근 시간 회사를 향해 가는 수많은 검은 인파 속에서 어느새 나는 거꾸로 걷고 있다. 반복되는 매일 아침에 맞닥뜨리는 전날의 악취는 영원한 우주 속에서 미아가 돼버린 듯한 공포에 들게 한다.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땅거미가 진 저녁 무렵 찾아오는 매일의 무력감, 주변 시시한 인간들에게 겨눈 화살이 어느새 나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하고 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와 명분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편의 코미디와도 같은 인생의 페이소스는 긴 마라톤 가운데 놓인 작은 물병이다. 저 앞에 흐리게 보이는 물병을 향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열과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품고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틀에 맞춘 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평균이 아닌 바늘 틈을 지향하는 병든 사회는 정화의 기능을 잃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맹 가리는 인간의 상처를 째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삶을 예찬한다. 희망과 체념 사이 줄을 타는 듯한 몇 개의 단편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평생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했던 그는 아마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쓰고 다시 한번의 성공을 거둠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의 허무함을 느꼈을 것 같다.


문득 삶에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더욱 소설을 들고 미친 듯이 탐독한다. 뿌옇게 드리운 안개를 걷어내고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 전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히려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나이가 들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 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 반대였다. 나이가 들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진다. 새로운 경험은 두려워진다.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 벗어나기 위해 책을 집어 들고 문장들을 써 내려간다. 시간에 잡아먹힌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시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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