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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Sep 20. 2020

읽는 기쁨과 씁쓸한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적당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대기업에 입사하면 꿈이 이뤄지는 줄 알았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 이후의 삶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한 학기에 몇 백만 원이 드는 등록금을 대출해야 했고, 공인 영어 성적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야 했으며, 무수히 많은 회사들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그럴듯하게 창작해내야 하는 것은 나에게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입사 이후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것처럼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알아야 할 또 다른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적당한 눈치, 상사의 취향, 술을 토할 때까지 마셔도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30분 일찍 출근하는 것, 내 잘못이 아니어도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것, 다음 달 월급을 위해 인격을 깎아내리는 갈굼을 삼켜내야 한다는 것. 주말에도 부르면 새벽같이 일어나 산을 타야 한다는 것. 바로 내 부모 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조직 문화를 혐오하면서 어느새 그것에 충실하게 따르는 나를 발견했다. 지독한 회사를 떠나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음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포기해버렸다. 매일 입금되는 월급은 마약 중독자처럼 나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일한 만큼 버는 거지, 소확행, YOLO라잖냐. 일 년에 몇 번 해외여행 가고, 좀 비싼 옷 입어주면 기꺼이 일주일 중 5일은 내가 아닌 좀비로 살 수도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털이 다 뽑힌 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30년 후에 목이 댕겅 날아가는 운명이 결정된 닭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소설은 안락한 도피처였다. 군대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잡은 추리 소설로 시작해 활자에 몰입하는 능력을 키운 후에는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친구들이 20대 여가를 술과 게임으로 시간을 보낼때 나는 방구석에 박혀서 책을 보고 영화를 봤다. 특정 영화에 꽂히면 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모조리 정복하고, 좋아하는 배우의 모든 작품을 답습하는 방식을 소설에도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취향과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다만 한국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독자와의 소통보다는 자신들의 해박한 문학적 지식의 나열, 끝없이 쏟아지는 여성주의와 퀴어 콘텐츠는 막 이제 호기심을 가지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온 아이를 겁에 질려 달아나게 하는 피규어 동호회 사장과 회원들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작년쯤인가, 한창 이 소설이 SNS에 입소문 탈즈음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혼자 혀를 차고 고전이나 이름깨나 드높은 작가들의 작품 아니면 읽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가진 독서가였으니. 헌데 책이라는 것을 꾸준히 읽다 보면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매일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 허무한 마음을 안고 퇴근하는 길에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결국 내가 경험한 나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 세대의 이야기, ‘판교 리얼리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소설을 내 손으로 검색해 찾게 됐다.


장류진 작가의 데뷔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80년대 생, 그녀와 비슷한 또래, 비슷한 길을 걸은 사람이라면 ‘이거 완전 내 얘기 아니야’라고 말할법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녁 무렵 각자의 회사에서 벗어나 호프집에서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 혹은 회사 생활을 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 일기장에 적혀 있을 법한 내용들이 인물들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건조한 사무실의 회색 배경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사건에 집중한다.  내가 만약 소설을 썼다면, 아마 이런 내용으로 쓰지 않았을까. 나 역시 소설을 쓴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쓰고 있었다. 나만의 일탈로써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기껏 해야 책과 영화 리뷰라는 탈을 쓴 조잡한 일기에 불과했지만 언젠가는 쓰겠다고 매일 출퇴근길에 다짐했던 문장과 이야기들이 그녀의 책에 이미 쓰여있었다. 허탈하면서도 놀라웠다. 중언부언 사족에 거북이 같이 답답한 내 글에 비해 간결하면서도 빽빽하게 채워진 단편들은 토끼처럼 순식간에 읽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십 년간 회사를 다니며 꾸준히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은 그녀의 압도적인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또다시 제자리에 멈춰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벌써 9월이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확인하며 연초의 다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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