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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Feb 21. 2022

큰 비행기와 작은 비행기, 어떤 게 더 안전해요?

[질문 있어요! #6]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질문 #6. 큰 비행기와 작은 비행기, 어떤 게 더 안전해요? 비행기 사고율과 사망 사고율은?


잡다한 비행이야기 일문다답 [질문 있어요! #1] 잡다한 비행이야기 일문다답 [질문 있어요! #1]

"안전하고 안 하고는 비행기 사이즈랑 상관없어. 정신 차리고 비행하면 사고 안나!"


이건 아닌 것 같다. 너무 무식해 보인다.


"자가용이나 관광용 소형 항공기의 사고율이 운송용 대형 항공기보다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지 비행기 크기만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모든 비행기는 크던 작던 테스트를 거쳐 안전하게 제작됩니다. 그렇다면 작은 비행기는 왜 사고가 더 많이 날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소형 비행기가 훨씬 사고가 많다. 세스나(Cessna), 파이퍼(Piper) 같은 작은 비행기는 느리고 가벼워서 안전한 줄 알았다.  급하면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가 보다. 나도 잘 모르지만 일단 이야기 큐.       

 

(좌)Pixabay로부터 입수된 Annette Leenheer님의 이미지 입니다. (우)Pixabay로부터 입수된 Darren Marsden님의 이미지 입니다.




미국 교통 통계청(BTS, Bureau of Transportation Statistics)의 기록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59개 항공사는(미국 연방 항공법 14 CFR part 121에 적용되는 항공사) 약 1,980만 시간을 비행했으며, 그중 40번의 사고가 발생하여 4명이 죽었다. 사망 사고는 단 2건이었다. 반면, 미국에서 (상업용이 아닌) 일반 항공기로 등록된 비행기들은 같은 해 약 2,180만 시간을 비행하였고, 1,220번의 사고가 발생했다. 그중 사망사고는 223건이고 모두 414명이 죽었다.   


이 통계에서 말하는 '항공사'의 비행기는 최소 10석 이상이다. 자가용, 관광용으로 사용되는 일반 소형 비행기는 이런 비행기에 비해 사고율이 열 배가 넘고 사망 사고율은 백배나 된다. 그렇다면, 작은 비행기는 큰 비행기에 비해 어떤 위험이 있는 것일까? 내가 생각한 몇 가지 이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추정해 보겠다. 그냥 추정이다. 난 이 분야의 박사도 아니고 연구해서 논문을 써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야기 정도는 해도 되겠지?  


 큰 비행기는 더 안정적이다

작은 비행기는 출력이 작고 무게가 가볍다. 쉽게 말해서, 공기 중에 낙엽처럼 훌러덩 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기의 질량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 큰 비행기가 올라타서 날아갈 정도니 기류의 힘이란 지상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세다. 물리 시간에 배운 것처럼 물체가 무겁고 빠르면 운동에너지도 커진다. 큰 비행기는 운동에너지가 큰 만큼 비행 중 거친 기류에 버티는 힘도 세져서 작은 비행기보다 안정된 비행을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출력이 센 제트기의 날개는 프로펠러 비행기의 날개보다 작고 날쌘 모양을 하고 있다. 소형 비행기는 기체에 비하여 날개가 크고 넙적해서 난기류에 더 많이 흔들린다.

    


비싼 비행기에 첨단 안전장치가 더 많다.

고급 자동차에 안전 옵션이 더 많은 것처럼, 비싼 비행기에도 안전기능과 백업 장치가 더 많다. 비싸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장치가 많아서 비쌀 수도 있다. 민간 항공기는 보통 클수록 더 비싼 법인데(군용기나 특수 목적의 비행기 말고), 만약 비행기를 싼 가격에 크기만 뻥튀기해서 만들면 과연 잘 팔릴까? 꼭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기는 한 번의 사고가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으니 안전을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행기의 안전기능(Safety Feature)이란 쉽게 말해 위험한 상황을 피하거나 벋어 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기능이고, 백업 장치(Redundancy System)란 어느 한 기능이 고장 나면 그것을 대신하도록 고안된 장치라고 보면 된다.


큰 비행기가 충돌에도 강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큰 비행기는 빠르고 무거운 만큼 운동에너지도 강하다. 에너지가 강하다 보니 지면에 충돌하면 작은 비행기보다 충격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약 200명이 탑승하는 보잉 B737 비행기는 40~50인승 터보 프로펠러 비행기보다 추락했을 때(최대한 비슷한 조건으로 추락했다고 가정하자) 승객의 생존율이 더 높다고 한다. 큰 비행기의 기체가 충격도 더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작은 비행기는 에너지가 작아도 충돌하면 승객이 직접 충격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 시속 60km로 달리는 경차와 시속 100km로 달리는 대형차를 비교했을 때 경차의 운전자가 대형자의 운전자보다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큰 비행기의 조종사는 대체로 경험이 더 많다

항공사의 조종사는 일반 조종사보다 더 엄격하게 훈련받는다. 그리고 똑같은 프로페셔널 조종사라 해도, 일반적으로 큰 비행기의 조종사가 작은 비행기의 조종사보다 경험이 많다. 대부분의 항공사 조종사들은 기회가 되면 작은 비행기에서 큰 비행기로 커리어를 업그레이드하고자 한다. 보통은(백 프로는 아니다) 큰 비행기의 조종사가 작은 비행기 조종사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나은 근무 환경에서 일한다. 월급이 많고 근무 조건이 좋으면 기량 좋은 조종사가 모이기 마련이다.


큰 비행기는 국가에서 더 엄격한 관리를 한다.

앞서 미국의 항공법을 언급했지만, 비행기의 크기와 비행의 목적에 따라 항공법도 다르게 적용된다. 즉, 더 크고 더 많은 승객을 운송하는 비행기는 국가가 더 철저하게 감독한다. 비행기가 잘 날 수 있는 것을 '감항성(Airworthness)'이라 하고 '감항성'이 잘 유지됨을 국가가 보증하는 것을 '감항증명(Airworthness Certificate)'이라 한다. 정부는 등록된 모든 비행기의 '감항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감항증명'을 발행한다. 이것 없이 비행기가 뜨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업 운송을 하는 큰 비행기는 일반 소형 비행기보다 더 엄격하게 점검을 받는다. 특히 정기 운항을 하는 항공사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정비, 운항 통제, 조종사 훈련 등 안전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까지 모두 정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뭔가 안전에 위반되는 것이 발견되면 벌금을 내거나 불이익을 받는다. 법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 항공 운송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잘 관리해야 하는 대중교통체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소형 비행기의 사고율이 더 높은가 보다. 만약 장거리 여행을 가려고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여러 가지 있다면 가장 안전한 것은 무엇일까? 나라면, 이름 있는 항공사가 운항하는 큰 제트기를 선택할 것 같다. 소규모 지역 항공사가 운항하는 터보 프로펠러 비행기보다 좀 더 안전할 것 같다. 같은 B737 비행기라도 운임이 말도 안 되게 싸면 의심이 간다. 혹시 경험이 적고 피로에 지친 조종사가 조종할지도 모른다. 직접 세스나 172 비행기를 타고 가면 어떨까?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직접 조종한다고 해도 정기 편 여객기보다 안전할 것 같진 않다. 비행기를 타려고 보니 겁도 나고 이런저런 걱정이 생기는데, 그렇다면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면 어떨까? 나도 자주 운전하지만,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비행기에서 죽을 확률보다 도로에서 운전석에 앉아 죽을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기차는 어떨까? 누구나 쉽게 예상하겠지만, 실제로 기차는 매우 안전하다. 좋은 선택일 듯하다. 하지만 아는가? 기차가 모든 교통수단 중에 가장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안전 넘버원은 무엇일까? 설마, 비행기?


못 믿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13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이언 새비지(Ian Savage) 박사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모든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10억 여객 마일(Passenger-miles, 총 여행자 수와 교통수단이 이동한 총거리를 곱한 것) 당 사고 사망자는 비행기가 0.07명으로 가장 적었다. 그다음으로 대중 버스가 0.11명, 기차가 0.43명이었다. 의외로 버스가 기차보다 더 안전했다. 택시, 자가용 등 모든 종류의 자동차가 7.3명이었고, 오토바이는 무려 212명이나 되었다. 이 결과를 보니 나 직업 잘 선택한 것 같다. 처음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 많았었는데.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천오백만 번 이륙을 해야 한 번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직업이 조종사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많이 이륙하진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비행기가 안전한데, 기내  안전 수칙 같은 건 무시해도 되겠네.'


...라는 무개념을 예방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겁을  주겠다. '비행기 화재'라는 것이,  게이 게이 ...∞ 굉장히 무서운 것인데,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직접적인 사인을 조사해보면 화재로 인한 화상이나 질식이 매우 많다. 좁은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불이 번지면 불길이 산소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데, 사람의 몸속에 있는 산소까지 뺏으려고  속을 깊게 파고든다고 한다. 그래서 시신을 부검해보면 기관지와  속이 까맣게  경우가 많다. 통계에 따르면, 착륙사고  화재가 났을 경우 90 이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이후부터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또한, 좌석별 생존 분포를 보면, 비상구에서 5열보다 멀리 떨어진 자리부터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 비행에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가능한 비상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고, 크리티컬 비행 단계(Critical Flight Phase)라고 불리는 이륙  3, 착륙  8 동안은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고 자세를 바로 하는 것이 멘털 관리에 도움이  것이다. 비행 공포증이 없어도 승무원의 안내를  듣고, 좌석에 비치된 안전 책자를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오토바이를 타도 212명의 희생자에 끼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무리 확률이 희박하다고 해도,  숫자에 포함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hoto by Jonathan Borb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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