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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Oct 14. 2020

차인 날 처음 본 미래 장인을 국밥집에 모셔다 드리다

결혼기념일 10주년 pt. 2: “한우 사태”

대문사진은 미래 아내와 지인들과 어느 뉴욕 밤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10월은 우리 부부 결혼 기념 월이다. 알고 지낸 기간은 15년 정도 되었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이고 브런치로 인도해준 아내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 쓸 타이밍이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다.


호세 꽃 사태와 부재중 꽃 사태를 겪은 미래의 아내는 내가 꽃을 연타로 보내고 내가 어디 놀러 가서는 선물 사주겠다고 연락하는 연애 못하는 남자(또는 크리스탈보다 더 순수한 남자)에게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유선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닥돌남(혹은 초식남)식으로 고백을 하자, 바로 순삭 당한다. 1차 거절.

격투기 오락에서도 같은 패턴의 공격을 하다보면 역공을 당한다

서로 호감이 있다고 착각한 나도 나름 억울했다. 둘이 낮 맥주도 마시고 미술관도 가고 했는데... (여사친과 남사친도 이런 걸 다 하는 행위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왜 미래의 아내가 나한테 호감을 조금이나마 가졌다고 생각한 에피소드 하나. 뉴욕 어느 동네 도서관에서 나는 미래의 아내를 만나서 노트북 파일 정리를 해주기로 했었다. 미래의 아내의 노트북을 켜니 미래의 아내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바탕화면에 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동생이라며 동생에 대해 (상세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미래의 아내가 나한테 동생을 소개(?)해 줄 정도면 우리는 그럭저럭 가까워진 거 아닌가 하고 혼자 단단히 착각을 한 셈이다. 결혼 10년 후 말하니 아내와 처제 모두 황당. (...)  

김연아도 황당해한다...

그리고 2009년 여름 미래의 아내는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다. 이때 난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이랑 사귀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그 분하고 결별하고 난 생각도 정리할 겸 꽃지해수욕장에 혼자 드라이브해서 내려갔다(혹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어떤 중년의 남자가 거기 가서 우두커니 바다를 보고 있다면 저일 수도 있습니다. 제게 중요한 고민거리가 있을 때 내려갑니다).


꽃지해수욕장에서 나는 바닷소리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미래의 아내에게 연락하기로 결정한다. 뚜 두두... “여보세요... 어... 오랜만이야. 시간 되면 한번 볼까?” (아주 상투적인 멘트) 딱딱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내가 받을 순 없지만 나중에 연락할게” “어....” 이때 나는 미래의 아내가 데이트하는 줄 착각. (나중에 들어보니 미래의 형님과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서 뚱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며칠 후 나는 친구들 만나느라 항상 바쁜 미래의 아내가 시간을 내줘서 겨우 만났다. 굽신굽신. 오랜만에 만나니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난 쿨한 척, 하지만 나의 진심을 머슴밥처럼 꾹꾹 담아서 “너를 더 알아 가고 싶어”했다. 일단 오케이 받고 헤어짐.


그리고 우린 몇 달간 데이트 아닌 데이트. 그리고 나는 다시 재도전. 하지만 그날 “한우 사태”가 터진다. 난 고백할 날을 잡고 한우 파는 경기도 어느 식당으로 간다. 이미 시작부터가 내 패착인 게 미래의 아내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고 추가로 포장할 한우를 샀다. 그리고 가족과 같이 먹으라고 했다. 한사코 안 받겠다고 하다가 차에서 내려면서 “이러면 난 부담돼서 못 만나” 사실상 2차 거절. 난 그럼 한우라도 가져가라고 했다(나중에 들으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우를 잘 드셨다고 한다).

한우 잘 먹고 난 또 차이고...

미래의 아내가 한우를 들고 집 잎에서 내리는데 우연찮게 미래의 장인어른이 등장하셨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던데... 매우 닮았다). 미래의 장인어른은 친구분들을 인근 순대국밥집에서 보시기로 했는데 데려다 줄 사람이 필요하셨다. 내가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어버버 네하는 순간 미래의 장인어른은 내 차에 타셨다. 장인어른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스스럼없이 부탁할 수 있는 초긍정적 성격을 갖고 계신다.


2차 거절로 내 머릿속은 포맷된 상태인데 장인어른은 나에게 호구 조사를 시작하셨다. 끝난 마당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나는 나름 성실히 답변을 드렸다. 속으로는 “모셔다 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제 끝났다”


아내와 나의 관계는 달달한 로코가 아니라 후속 편에 후속 편이 있는 액션 블럭버스터 영화와 같다. 이런 류의 영화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안 끝난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간 후.


한우 사태로부터 1주일 후, 미래의 아내가 먼저 연락이 온다. 나중에 들으니 미래 장인어른과 미래 처제가 킹메이커, 아니 우리 부부 메이커였다.


결혼 10주년 pt. 1:

https://brunch.co.kr/@jitae2020/79

결혼 10주년 pt. 3:

https://brunch.co.kr/@jitae2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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