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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Oct 05. 2020

내가 보낸 꽃은 어디 가고, 호세가 왜 꽃을 보내

결혼기념일 10주년 pt 1: 첫 만남, 그리고 꽃 배달 사고

10월은 우리 부부 결혼 기념 월이다. 알고 지낸 기간은 15년 정도 되었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이고 브런치로 인도해준 아내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 쓸 타이밍이 되었다.


아내는 10월 중순 처음 뉴욕 차이나타운 훠궈(중국식 샤부샤부)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알게 된 지인이 뉴욕에 놀러 오면서 본인이 아는 뉴욕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밥을 한 끼 먹자고 불렀다. 당시 뉴욕에 이민 간 고모 가족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던 나는 약속 장소에 나가보았다. 남자들은 다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 같아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날 부른 지인은 술을 좋아해서 다 같이 칭다오 맥주를 여러 병 마셔서 모두 알딸딸했다. 대문 사진은 그날 파하기 직전 종업원이 찍었던 단체 사진이다.


계산이 끝나고 서로 바이 바이 하기 전 미래의 아내 한테 가서 (난 한국인인 걸 알았지만) “알 유 코리안?”했다. 미래의 아내는 (속으로 왜 저 남자는 한국인이면서 영어를 쓸까) “한국인이에요”.


국적 확인이 된 후 바로 나의 간략한 소개. 그리고 연락처 교환. 마지막으로 진부한 레퍼토리로 바이 바이.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그리고 난 3일 후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 저번에 만났던...” 약속 성공. 일단 며칠 후 34번가 뉴욕 한식당에서 보기로 했다.

우리는 겨울왕국 한스와 안나처럼 불꽃 튀는 첫 만남은 아니었다

두 번째 만남이자 첫 번째 단독 회담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같은 학교라는 공통점, 정치, 사회, 과거 연애 등을 이야기해보니... 비포 선라이즈를 찍을 기세라고 생각했지만... 선만 라이즈하고 그전에 우린 헤어졌다.

비포 선라이즈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처럼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로맨스는 없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미래의 아내는 건강한 다크맨들을 좋아했었다. 참고로 여기서 다크맨이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남자들이다. 다크맨 조건에는 내가 부합되는데 건강맨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 둘의 아마도 유일무이한 공통점은 사회, 정치 이슈에 대해 비슷한 견해를 가졌다는 것. 다른 점은... 결혼하다 보니 너무 많아서 별도의 글이 올라가야 할 듯.

다크맨 예시: 소련의 혁명가 트로츠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돌아오니 장가가라고 주위에서 소개팅과 맞선을 해줬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내 기준이 미래의 아내에게 세팅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분들과 몇 번 만나다 흐지부지. 그런 와중에 밸런타인 데이가 왔다. 아직 미국에 있는 미래의 아내에게 꽃을 보내서 내 마음을 보여주자! 오픈 데이터베이스에 나와 있는 미래의 아내의 근무지 주소를 알아낸 후 꽃 주문 및 배송 클릭.


2월 14일 동부 시간 늦은 오후에 맞춰서 전화를 해봤다. (또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꽃 받았어...?” 미래의 아내는 “아니. 무슨 꽃?” 난 당황하기 시작. “얼마 전에 사무실로 보냈는데...” “확인해볼게.”


참고로 미래의 아내나 지금의 아내(통신 기능 없는 시계를 차기 전)는 전화를 잘 안 받거나 다시 전화를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며칠 후 다시 연락. 미래의 아내가 황당한 말을 한다: “호세라는 사람이 나한테 꽃을 보냈던데”


내 꽃은 어디 가고 호세란 놈으로부터 꽃을 받았지???


당시 나 꽃 업체에 따질 경황이 없았다. 아마도 내 이름과 호세라는 친구의 꽃이 서로 섞여서 각자 엉뚱한 데로 배송된 듯하다. 호세의 배우자나 애인도 황당했을 듯하다. 정체불명의 코리안이 본인한테 꽃을 보냈을 테니.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야 축구 1부 리그(= 관계 진전)로 올라갈 수 있는데 이건 역으로 3부 리그(= 누구신가요?)로 내려간 상황이다.


엇갈린 내 팔자. 하지만 꽃 배달 사고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노심초사해서 나중에 다시 한번 꽃을 보냈더니(이번에는 다른 배송 업체를 통해서), 하필 미래 아내가 미래 가족과 여행을 가는 바람에 돌아와서 받았을 때 이미 꽃은 시들어버렸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에단 호크가 줄리 델피와 결혼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린 거에 비하면 내가 나은 편이다.


결혼10주년 pt. 2

https://brunch.co.kr/@jitae2020/107

결혼10주년 pt. 3:

https://brunch.co.kr/@jitae2020/116

슬램덩크 안 감독이 되어 버린 아내:

https://brunch.co.kr/@jitae20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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