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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Oct 31. 2020

중년의 백수, 기업 AI역량검사에서 허우적거리다

2020년 기업 채용 절차에 적응 안 되는 1인

난 낮에는 구직 활동, 밤에는 브런치 활동하느라 바쁜 중년의 구직자 1인이다.


꽤 오랜만에 구직 활동을 재개했더니 취업 시장은 새롭게 변해있었다. 국내 기업들은 자사의 취업 포털을 새롭게 단장했었다. 가령, 해외에서 살았으면 0년 0월 0일부터 0년 0월 0일까지 상세히 기재해야 하며, 완성이 되면 친절하게 타임라인으로 보여준다. 딱히 내가 타임라인을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아마 채용 담당자들이 한눈에 보기 쉬우라고 만든듯하다. 근데 30년 전에 해외에 살았던 나 같은 사람들한테는 곤욕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관련 서류도 찾기 어려운데 날짜까지 기재하라니... 굳이 필요한가.


그리고 성적 입력. 학교를 떠나서 10년이 넘게 일한 사람에게도 성적 입력을 요구하니 곤욕스럽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전공 성적 따로, 어떤 기업은 학기별 성적까지. 경력자들은 딱히 성적으로 합격/불합격을 할 거 같지 않은데도 필수로 입력하라니... 이건 최소한 옵션으로 놔두어야 하는 건 아닌가(내 성적이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이제 와서 굳이 보여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바뀌어도 바뀐 게 없다면 과거 회사 작성란에 과거 회사들에서 내가 한 업무들에 대한 상세 기재란이 여전히 없다는 점이다. 여전히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듯하다. 작은 칸에다가 “서류 검토” 이렇게 쓰면 칸이 꽉 찬다. 국내 회사들은 아직도 내가 어떤 회사에 근무했는지, 거기서 얼마나 벌었는지, 왜 퇴사했는지가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이 정도까지는 그래도 부담은 가지만 정작 AI역량검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모기업에 서류를 접수했더니 아래와 같이 안내 이메일이 왔다:


첫인상은 코로나19 때문에 이렇게 시행하나 생각이 들었었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요새 여러 기업들이 도입한 채용 과정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서류 접수-실무면접-임원면접이었다면, 서류 접수 후 면접 전 사이에 들어온 단계였다. 이메일을 찬찬히 훑어보니... 갈수록 구직 활동이 빡빡해지는 게 실감이 왔다:


요약하자면,

1. 크롬에서만 구동 가능 (검색 엔진도 여러 개인데..)

2. 가능하면 유선 인터넷으로 할 것 (회사나 피시방이 아니면 요새 누가 유선을 쓰나??)

3. 2일 이내 완료 (바쁜 사람은 쉽지 않겠군)

4. 1시간 동안 AI면접> 적성검사> 각종 게임> 심층면접 (왔더포크???)


4번이 가장 이상했다. 이걸 한다고 내가 붙을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해야 하나 하루를 고민하다가 결국 해봤다.


난 밤에 단정하게 셔츠를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AI면접이라는건 사실 내 얼굴을 보고 자기소개하는 거였다. 셀프면접? 내 얼굴을 보며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 난 일단 AI면접 시작부터 버벅.


그다음은 적성검사. 이건 군대나 다른 회사에서도 여러 번 했으니 나는 비교적 신속하게 했다. 함정 질문들 - “우리 사회는 부조리하다” 같은 질문들은 적절히 처리. 사실 이런 적성검사를 여러 번 해 본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차라리 심층면접이 나을 듯해 보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허우적거릴 타이밍. 내 전공에 대한 검사가 아니라 프로게이머를 찾는 인상을 받았다. 갑자기 순식간에 카드가 바뀌고 이전 0번째 카드랑 같은 카드가 무엇인지 누르시오, 여기저기 뭐가 날아오면 최대한 빨리 맞추시오... 나는 안드로메다급으로 못했다. 내가 하는 업무가 매번 빨리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맞지만 몇 초안에 처리할 성질의 업무는 아니다. 사실 그런 업무가 어디 있나. 실시간 게임을 하는 프로게이머나 주식 거래하는 데이트레이더도 아니고. 여기서 이미 난 게임 끝. GG.


심층면접은 앞서 본 자기소개랑 비슷했다. 내 얼굴을 쳐다보며 상황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데, 이미 난 게임에서 진을 빼고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주어진 시나리오에 대한 답변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난 딱딱한 답변을 했다.


AI역량검사는 끝. 이제 불합격 문자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검사 방식으로 직원을 제대로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펙과 열정에 더해 이제는 일반적인 연산력과 논리력까지 찾으니 구직자들은 괴롭다.


그렇다고 나도 손가락만 빨 수는 없으니 여기저기 계속 지원하겠다만, 기이한 검사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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