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퉁불퉁 뚝배기 Nov 14. 2020

중년의 백수, 처음으로 새벽 미사 가니 면접 연락 오다

그래서 이후 새벽 미사에 계속 나가고 있다

연애 당시 아내는 나에게 결혼 전에 두 가지는 안 바꾸고 싶다고 했다.


첫째는 야구팀. 야구팀의 경우 내가 자주 팀을 바꾸는 자유계약팬이니 우리 부부는 쇼윈도팬이다. 나는 겉으로 OO파이팅!이라 외치지만 속으로는 쿨쿨... 다행히 아내가 팀 순위를 매일 체크하는 팬은 아니니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OO이 플레오프를 가면 같이 응원은 한다. 아내가 응원하는 팀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엘롯기(엘지, 롯데, 기아) 중 하나라 두산처럼 매년 플레이오프를 진출해서 중요한 경기마다 일희일비할 일이 없다. 그래도 두산이 우승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팬들이 부럽다... 약간은.


둘째는 종교. 어차피 난 날라리 신자라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미사? 가서 수면을 취하고 앉아다 일어서기를 좀 하면 되지. 이 정도야...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랜드 플랜이 있었다. 슬램덩크의 안 감독이 돌아온 탕아 정대만을 방치(?), 아니 기다려줬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내가 더 깊은 신앙심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정대만이 북산 농구부에 돌아왔듯이, 둘째가 태어날 시기에 나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스스로 좀 더 자아 찾기를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견진성사를 받기로 결심했었었다. 참고로 “견진성사는 일곱 성사 중 하나로 세례성사를 완성하고, 성체성사에 충만하게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성사이다.”(명동성당 웹사이트)

워낙 유명하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2020년 현재. 나는 중년의 백수로서 구직하는 중이다. 밤에 기도를 드리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새벽 미사를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 난 무엇보다도 잠이 소중한 1인으로서 시큰둥했다. 이미 잠자기 전에 9일 기도를 하는데 새벽 6시 미사를 가라고? 가서 졸기만 할 텐데.


아내: “내가 여보 만나기 전에 결혼에 대해 괴로워할 때 새벽 미사 갔다는 이야기 했었잖아. 내가 3일 미사 나가고 3일째 되던 날 여보가 연락 왔었어.”


나: (...)


아내: “진짜로 (구직이) 절박하면 가봐”


나: (1초 생각 후) “가볼게” “근데 여보는 그 이후로 새벽 미사 안 나가지 않아?”


아내: (배시시 웃다)


새벽 미사 시간을 확인해보니 월수목금 계속 있다. 굿바이 나의 아침잠.

원래는 저녁 미사를 가려고 했는데 한번 밖에 없다...

다음날 새벽 5:25.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 아내가 깨니 나도 덩덜아 깬다. 평소 같으면 다시 자는데 오늘은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는다. 내 뇌는 아직 수면 중이다. 둘러보니 50명 정도가 이미 와 있다. 혼자 온 남자 신자 수 보다는 아내와 같이 오신 남자 신자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졸다가 들킬까 봐 난 제일 뒤쪽에 앉았다.


성가대가 없으니 미사는 짧게 끝났다. 30분 정도 후에 나와서 찬 공기를 마스크를 통해 마시면서 오늘도 산을 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이 벌어진다. 바람 쐬러 밖에 나왔는데, 오래전에 지원하고 나도 잊고 있던 곳에서 연락이 와있다. 면접 진행하자고.


부들부들 손이 떨면서 아내에게 연락하여 상황 설명. 아내도 놀란다. 새벽 미사 갔다고 바로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와우...


아직 재취업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문 하나가 조금은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절박한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들어준다던데 정말로 그런 날이었다.




중년의 백수가 뒷산을 오르는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21


중년의 백수의 AI 면접 후기:

https://brunch.co.kr/@jitae2020/1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