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림체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동화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 그림 2015년)는 독일 어린이 동화책이다. 아내가 오래전에 샀었는데 아들이 얼마 전 읽어달라고 들고 와서 처음으로 읽어주다 보니 독일판 선녀와 나무꾼이다.
동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은 어부와 전업주부의 아들. 매일 아빠는 어업 활동을 하느라 바쁘고 엄마는 집에서 매주 꼼꼼히 청소를 하는 한편 한 번도 바다 근처를 가보지 않았지만 주인공에게 바닷속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해준다.
(**스포주의**)
알고 보니 엄마는 셀키라는 바다표범이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던 존재였다. 아빠는 엄마의 바다표범 가죽(옷)을 숨겨서 바다로 못 돌아가는 엄마와 결혼해서 주인공이 생겼다. 그리고 아빠는 엄마가 못 도망가게 매주 엄마랑 와인을 마시고 엄마가 잠들면 엄마의 바다표범 가죽을 집안 다른 장소에 숨긴다. 그리고 엄마는 본인의 가죽을 찾기 위해 매주 집안 다른 곳을 정밀히 청소했던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은 아빠가 이 가죽을 숨기는 걸 목격하고 엄마에게 아빠가 셀키라고 (잘못) 말하고 어디에 가죽을 숨겼는지 말해버린다. 엄마는 바로 다음날 바다로 돌아간다. 남은 건 아빠와 아들. 엄마는 매해 해변에 물고기 두 마리의 고등어를 갖다 놓는다면서 동화는 끝난다.
나에겐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아들조차 안 데려가는 엄마. 아내 하고도 한참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정서상 선녀는 옆에 아이들을 끼고 하늘나라로 가버리는데 북유럽 동화에서는 아들은 놔두고 가버린다. 문화적 차이인지. 혹은 셀키 가죽은 일인용이어서 어차피 아들과 같이 물속에 못 들어가서 그런 건지...
충격이 가시자 내가 궁금했던 점은, 이 동화책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유사한 줄거리를 갖고 있는데 왜 동서양 동화에서 이런 공통점이 발견되는가 였다.
현대 시각에서 보는 어부와 나무꾼의 행위에 대해 이미 많은 글들이 법률상 나무꾼의 범법 행위와 페니미즘 관점에서의 나무꾼의 행위를 다루고 있어서 난 위 공통점에 대해 궁금했다. 질문을 만들어보면:
왜 동서양 사회들의 동화에서 공통적으로 가난해 보이는 남성이 다른 세계 여성의 신비한 아이템을 훔치고, 아이템이 없어진 구실로 여성이 남성의 세계에 남게 해서 결국 아이템을 훔친 남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를 낳지만, 여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남성은 이를 계속해서 막지만, 왜 결국에 여성은 돌아가는지?
위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1) 동화는 최초 발생한 당시 시대상을 상징적,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완전히 창작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특성을 후세로 전하고자 만든 것으로 생각해본다.
2) 당시 시대적으로 여성이 흔치 않은 폐쇄된 가난한 집단에서 노총각 결혼 문제(당시에는 집단간 교류가 빈번하지 않았으니)를 어떻게 했을까. 여성이 흔했다면 굳이 폐쇄된 집단의 남성이 다른 집단의 여성과 결혼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3) 이 집단으로 우연찮게 들어온 여성(전쟁 포로, 도망, 난파 생존자 등) 대한 소유권(당시 여성은 개인으로서 인정을 못 받았으니)에 대한 남자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은 아마도 여성이 소유한 아이템을 먼저 차지하는 남성이 배우자로 맞이 할 수 있다는 집단의 암묵적인 룰이 있었을 것 같다.
4) 이 여성은 이 집단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이템을 뺏은 남자다. 그리고 당시엔 가사 일은 매우 고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화책을 보면 셀키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선녀도 남성의 노모를 모시고 애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5) 여성은 고향이 생각나고 돌아가고 싶지만 재혼이 쉽지 않은 남성은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내가 아이템을 보여달라고 해도 거절(나무꾼)하거나 숨기는(어부) 방식으로 표현된다.
6) 하지만 여성은 아이템(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상징)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이 여성은 도망가거나 자살(?)로서 동화는 끝난다. 참고로 아내가 생각하기에 하늘나라나 바다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살을 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동화 마지막 장면에 “여성이 결국 도망간다”를 넣었을까. 당시 남성들에게 “그러니까 그러지 마”의 훈계보다는 “언제 여성이 도망갈지 모르니 주의해라”라는 메시지를 그 집단의 후대 남성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