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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Sep 27. 2020

태국과 홍콩 시위에 등장한 영화 속 저항의 상징

헝거 게임 경례와 브이 포 벤데타 가면

평소 스포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많은 1인으로서(요새는 개점휴업이지만...;;),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생각해 둔 내용에 대해 써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 저항의 상징이 어떻게 현실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나는 나약하고 무시당할 수 있고, 파멸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상징으로서 나는 부패하지 않으며 영원할 수 있다” (배트맨 비긴즈 2005)


“As a man, I'm flesh and blood, I can be ignored, I can be destroyed; but as a symbol... as a symbol I can be incorruptible, I can be everlasting.” (Batman Begins 2005)

배트맨 비긴즈는 놀런 배트맨 3부작 중 멋진 대사들이 가장 많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주인공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왜 배트맨이 되기로 결심하는 이유를 위 대사를 통해서 보여준다. 브루스 웨인이라는 개인은 한계가 있지만 하나의 상징(박쥐)이 되어 범죄자들을 잡기에는 큰 힘이 된다고 믿었다. (스포주의) 그리고 3편 다크 나이크 라이즈에서 존 블레이크라는 전직 경찰관에게 배트맨의 역할을 넘긴다.

존 블레이크(좌)에게 배트맨 역할을 넘기는 브루스 웨인(우)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이러한 특정 상징을 개인이 아닌 단체나 집단, 시민들이 활용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1 헝거 게임의 세 손가락 경례

영화 헝거 게임 1(2012)의 여주 제니퍼 로렌스는 독재 국가가 주관하는 배틀 로얄, 즉, 각 지역구에서 무작위로 두 명씩 선정되어 다른 지역의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대회에 여동생 대신 지원한다. 제니퍼는 대회 중 자기 지역구를 향해 3개 손가락 경례를 하자, 주민들은 단체로 호응해서 같은 3개 손가락 경례로 화답한다. 그리고 곧 이어서 반란이 일어난다. 영화 속에서 이 손가락 경례의 상징은 독재 국가에 대한 저항.


2014년 5월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태국은 100년 동안 22번의 쿠데타가 있었다고 한다(이중 13번은 성공, 9번은 실패). 4년 반마다 한번 꼴인 셈이다. 2014년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헝거 게임의 세 손가락 경례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는 이 경례를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시민들을 체포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0년 9월. 학생 주도의 시위는 군부가 밀어준 총리의 하야, 국회의 해산 및 개헌, 그리고 왕실의 개혁을 요구한다(참고로 태국의 왕실이 군부의 쿠데타를 승인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쿠데타 성공 여부가 결정될 정도로 왕실의 힘이 막강하다). 이때 다시 세 손가락 경례가 시민운동의 상징으로 재등장했다. 하지만 태국인들의 시위가 태국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몇십 년 동안 계속해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왕실, 군부와 정치인들의 삼각 동맹은 어느 한쪽에 균열이 발생해야 변화가 가능할 텐데 아직까지는 견고해 보인다.

2014년 태국 쿠테타 당시 반대 시위의 경례

여담으로 세 손가락 경례의 기원은 걸스카우트 경례이다.

걸스카웃이 세 손가락 경례의 원조이다

#2 브이 포 벤데티 가이 포크스 가면

영화 브이 포 밴데타(2005)의 남주 브이는 독재 정부(근미래 가상의 영국) 인체 실험을 받고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고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정부의 주요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는 저항의 상징으로 이 가면을 쓰고, (스포주의) 결말에서는 시민들에게 가면을 배급해서 시민들이 모두 이 가면을 쓰고 정부에 저항하고, 결국 독재 정부는 무너진다.

계속해서 보면 나름 귀요미 마스크

영화 개봉 이후 가이 포크스 가면은 전 세계 시위에서 종종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서도 등장한다. 특히 2019년 11월부터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이 시행되면서 홍콩 시민들은 가이 포크스 가면 등 다양한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하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이 법을 근거로 3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홍콩 고등법원은 복면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20년 5월 중국이 이보다 더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홍콩 특별행정구의 국가보안법을 통과함으로써 홍콩 민주화 운동은 풍전등화이다.

작년 홍콩 민주화 시위 한 장면

여담으로 가이 포크스 가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1605년 영국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폭파하려던 화약 음모 사건에 가담한 사람 가운데 가장 유명한 가이 포크스를 비현실적으로 표현한 가면을 말한다... 2005년 영화로도 각색된 브이 포 벤데타에서 사용된 이후에 광범위한 저항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 가면은 인터넷 토론장에 등장한 후 현실의 저항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이 가면을 쓰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나 가이 포크스 얼굴을 본 떠 만든 마스크니 수수료 줘야지

어쩌면 한국 정치 역사상 우리는 굳이 영화 속에서 시위 방식에 대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419 민주화 운동,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화 운동, 2016년 촛불 혁명 등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불의에 대한 저항을 몇십 년간 성공적으로 하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주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가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태국이나 홍콩과 다르게 여러 사람들의 희생으로 성공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은 나아졌다.

영화 보다 더 대단한 2016 촛불혁명 당시 광주 횃불 시위

홍콩 민주화 운동 언급된 글:

https://brunch.co.kr/@jitae2020/48

블랙 팬서 와칸다 왕국에 대한 흑인들의 자부심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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