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퉁불퉁 뚝배기 Jan 13. 2021

중년 신입, 매일 부모님 집으로 출근해서 무전취식하다

공유 오피스 문의, 재택 준비물, 그리고 쌀 씻기

나는 오늘도 부모님 집으로 출근했다. 집에서 10여분 거리. 당분간 여기가 내 사무실이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고 아이들이 계속 집에 있는데 방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한 것이 공유 오피스.


난 아내가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에 가서 일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난 진정한 오피스 허즈번드?!


같은 방을 쓰면 둘이 일은 안 하고 데이트만 할 수 있으니... 라기보다는 각자 회의나 전화가 많으니 나는 같은 공유 오피스 내 다른 방을 알아봤다.


안내받은 방은 작고 유리창이 있는데 복도를 향하고 있다. 창문을 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식되고,  창문을 닫으면 골방 느낌이 난다. 썩 마음에 안 드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월 30만원 할까라는 헛된 망상을 품었다. 할인받아서 월 45만원.


월세가 부담이다. 게다가 20일 치 점심값과 교통비를 더하면 다음과 같다:


월세 45만원 + 점심값 16만원 + 교통비 3만원 =

약 64만원


거기다가 커피나 군것질이라도 하면... 커피는 카*미니를 사다 놓고, 간식은 큰 걸 하나 사서 일일 정량 배식을 하면 비용 절감은 되겠지만 결국 예상보다 더 쓸 거 같다. 돈이 아깝다.


공유 오피스 담당자와 상담하는 와중에 부모님 집이 떠올랐다. 어차피 두 분이 집에 자주 안 계시니 내가 방 하나를 사무실로 개조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시 부모님에게 여쭤보고 바로 구입할 아이템 목록을 쭉 적어봤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한 달치 월세보다 적은 비용으로 사무실을 차리는 거다. 생각보다 빨리 집단면역이 되면 출근이 더 빨라질 수 있으니 큰 비용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24인치 모니터 - 15만원

보급형 레이저 프린터 - 10만원(10년 된 복합기 모델을 부모님 집에다 가져다 놓고 집에다 새 걸로 교체)

보급형 의자 - 5만원

기본 책상 - 3만5천원

유선 키보드 - 2만원

USB 4 슬롯 - 5천원

책상 램프 - 먼지 쌓인 것

유선 마우스 & 마우스패드 - 서랍 안에 있던 것

유선 이어폰 - 집에서 굴러다는 것

총 40만원 미만


이 정도면 준비가 완벽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변수가 생겼다. 예상보다 줌으로 많은 회의와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부모님 집 와이파이가 특히 오후 4시 넘어가면 버벅거린다. 다들 넷플릭스 볼 시간이어서 그런가...

어느 하루에는 회의가 5개...

결국 와이파이 대신할 랜선을 구매하기로 결정. 인터넷 공유기와 책상 위치까지 거리를 재어보니 13m 정도다. 랜선 15m를 1만5천원에 구입했다.


점심은 혼자 해결하려고 했으나 결국 부모님이 차려주신다. 본의 아니게 나는 무전취식을 하게 되었다. 출근해서 방으로 바로 들어가서 일하다 점심때 나와서 먹고 다시 쏙 들어가니. 난 월세도 안 내는 불효자가 되었다.


그래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난 부모님 집으로 출근하면 점심때 같이 먹을 쌀을 씻는다.


코로나19 덕분에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늘게 되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67

https://brunch.co.kr/@jitae2020/168










작가의 이전글 중년의 백수, 10년 만에 다시 과제 발표 준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