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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Jan 05. 2021

중년 신입의 NGO 출근 첫날

코로나19로 휑한 사무실, 겨울 날씨로 휑한 하루

난 NGO 사무실로 첫 출근했다. 오랫동안 먼지가 쌓이던 (그나마 좋지만 방한이 덜 되는) 코트를 꺼내서 입었다. 머리에 (매우 오랜만에) 왁스를 발라서 비니를 못 쓰고 나오니 탈모가 진행되는 머리가 춥다. 평소 신던 등산화 대신 구두를 신으니 발가락도 춥다. 매서운 바람을 못 견디는 내 오장육부가 덜컹덜컹거리는 추운 날씨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직원이 몇 명 없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신입 교육을 위해 필요한 인원만 나와있다고 한다. 몇 명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인사를 하는데 마스크 때문에 상대방 눈만 보인다. 다들 나보다 최소 5년은 젊어 보인다. 내가 이 조직의 평균 직원 연령을 0.5년은 끌어올린 것 같다. 전 회사에서는 내가 평균 직원 연령을 0.5년 끌어내렸는데...


어느 조직을 가나 첫날은 쉼 없는 교육이 잡혀 있다. 전산팀, 인사팀, 총무팀의 연달아 교육이 진행된다. 수많은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휙 들어왔다가 휙 빠져나간다. 그리고 현장에서 바로 배정된 노트북에 정보를 입력하는데 난 긴장해서 순간 손가락이 독수리 타법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 직장과 전 직장의 내부 시스템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작은 위안이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식당에서 먹기는 그러니 샌드위치를 사러 나갔다. 매서운 바람에 내 오장육부가 다시 들썩거린다. 방한 귀마개라도 할걸...


가장 중요한 교육인 팀장과의 교육이 오후에 잡혀 있었다. 교육을 들어보니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매우) 많아 보인다. 내가 이전 조직들에서는 한 분야만 신경 써야 했다면 여기서는 이것저것 다 챙겨야 한다. 고도의 멀티태스킹이 요구된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나의 평소 관심사를 자료 공부 및 검토, 팀 간 업무 조율, 방향성 설정 및 진행, 여론조사 등에 다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교육이 끝나고 배급받을 컴퓨터에 메신저 기능이 설치가 잘 안된다. 두어 시간을 (브런치 쓸거리를 생각하면서) 기다리니 드디어 세팅 완료.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이 메신저로 반갑게 인사한다. 내 머릿속 지우개가 기억하는 속도보다 빨리 지운다. 퇴사 전에는 다 외우겠지... 한 분은 내가 인수받아야 할 내용에 대해 최대한 빨리 이야기하고 싶어 하신다. 넵! 제가 다 인수받아야죠! (하지만 속으로는 두렵다) 다음날 바로 회의가 잡힌다.

회사 내부도 썰렁했지만 창 밖도 썰렁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외부에서 보낸 긴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직원들 서로 간의 호칭이 “OO샘”이라고 하니 웃겼는지 뒤집어진다. 졸지에 난 존샘(John  Sam) = 좋은 샘 =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조직. 새로운 마음.


2021년. 중년의 울퉁불퉁한 신입 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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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jitae202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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