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속품 셀프 교체 실패기
DIY (Do it Yourself). 즐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예외다. 난 어쩔 수 없이 DIY를 하게 되었다. 아마 DIY하면 생각나는 미국도 인건비가 비싸서 많은 경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년이 넘었고 애초 시공도 잘하는 건설사가 시공한 게 아니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임시로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집주인이 처음부터 전세용으로 돌려놓아서 좋은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설치된 것들이라 우리가 들어온 이후 고장이 종종 났다.
곰팡이와 바닥 누수와 같이 큰 문제는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든 집주인이 사후에 수리비를 주긴 준다. 하지만 애매한 것들 - 전기 안정기, 수도꼭지(수전)등의 부품은 집주인에게 청구하기가 애매하다. 건 당 교체 및 수리 금액이 10만원 선이며, 아파트 구조물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작년 말 추운 겨울에 우리한테 나가라고 한 이력이 있는 집주인한테 우리가 수리비 10만원 청구서를 내밀기는 좋은 전략이 아니다. 우리는 올 연말에 재계약이라는 더 큰 걸 요구해야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난 그동안 이 임시거처에 최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동네 인테리어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주문해서 직접 해보려고 한다.
동네 인테리어는 이사 오는 집주인들에게 통으로 다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우리가 요청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수리는 잘 안 하려고 한다. 전기 안정기 교체 작업은 아예 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부품 수급이다. 오래된 부품이다 보니 단종되거나 요새 잘 사용하지 않는 부품들이라 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난 부품을 찾고 주문하는데 기본 1-2시간이 걸린다.
형광등 전기 안정기는 처음에는 찾기가 어려웠는데 몇 번 사다 보니 이제는 구입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작은 현관 등은 찾기가 어렵다. 찾았다 해도 이런 경우에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 500원짜리 전구를 사는데 배송료 2,500원이 나온다. 크기가 안 맞으면 다시 주문하니 따블 비용.
부품을 주문하고 받으면 그때만큼은 왠지 내가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유튜버들도 영상 속에서 손쉽게 하는 것 같으니. 영상 속에서 몇 시간 고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척척한다. 어찌 보면 낚시 영상인가...
난 부품을 주문하고 내가 직접 시도해보지만 결국에는 숨*같은 매칭 앱에 요청하여 흐름으로 간다. 현관 등은 내가 시행착오 끝에 직접 교체했는데 어쩌면 유일한 성공 사례다.
얼마 전 저녁. 양변기가 물이 샌다고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몇 개월 전에도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당시 대충 여기저기 만져보니 이후 큰 문제가 없었었다.
이번에도 내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교체를 하려고 했다. 부속품을 사러 동네 마트와 다*소를 갔더니 없다. 결국 밤에 버스를 타고 재래시장 주변에 있는 가게를 가보니 다행히 문 닫기 전에 구할 수 있었다.
고이 모시고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작업 시작. 기존 부품을 제거하는 건 자신이 있다. 난 작년 귀국 후 격리 2주간 온갖 오래된 설치물들을 스패너와 드라이버로 제거를 한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오래된 부속품은 잘 안 풀리니 스패너로 열심히 푼다. 거기까지는 순조롭다. 새로 산 부속품을 언박싱. 유튜브 영상도 봤겠다. 그냥 끼고 돌리니 잘 결합된다. 그런데 막상 물을 흘려보니 물이 차기만 하고 안 내려간다. 몇 번을 시도해보지만 안된다. 심지어 부속품은 잘 안 맞는다(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우리 것은 대중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원래 부속품을 원위치했는데 물이 줄줄 샌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한 작업이 11시 반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작업을 포기하고 아예 새로운 것을 사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건 집주인에게 청구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과연 해줄지. 그리고 유사한 사이즈에 제일 싼 것들은 이미 품절. 좀 더 보편적인 것은 높이가 있어서 우리 집에 설치에 문제가 있다. 내 집도 아닌데 30-40만원 이상을 쓸 이유가 없다.
때마침 퇴근한 아내가 맞는 부품을 찾았다. 42,000원. 일반 부속품보다 2.5배가 넘는다. 일단 주문.
다음날 아침. 출근 전 난 혹시나 싶어 어제 갔던 재래시장으로 다시 걸어갔다. 버스비도 아깝다. 일단 운동삼아 걷기로 했다. 재래시장에 다다르기 전에 잠깐 숨을 쉬려고 멈추니 비로소 보인다. 아침 일찍 철물점이 열려있다.
들어가 보니 인터넷 가격으로 같은 부속품을 팔고 있다. 요술 램프를 발견한 알라딘처럼 나는 정성스럽게 부속품을 모시고 집에 왔다. 이제 출근 전에 설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새 부속품을 설치하니 물이 샌다. 어제부터 몸을 욱여넣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마디마디가 쑤신다. 출근 시간은 다가온다.
결국 미*와 숨* 앱을 설치하고 요청을 한다. 어떤 사람이 8만원을 제시한다. 부품값을 빼고는 5만원이라고 한다. 다음날이 아닌 당일에 오는 조건으로 난 한 장 더 주기로 제시했다. 정작 불러놓고 기다리니 다른 사람들이 견적서를 제시한다. 3.5만원부터 35만원(!!). 스팩트럼이 다양하다. 일단 먼저 견적을 제시한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결국 그분도 한 시간 반의 사투 끝에 부속품 설치를 했다. 하지만 통화를 해보니 부품도 잘 안 맞아서 뭘 깎아서 설치했다고 한다. 본인이 고생을 했으니 좀 더 달라고 한다. 30-40만원 들여서 새로 교체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히니 바로 보내줬다.
다만 딸이 말하길, 그분이 설치를 하면서 욕설이 난무했다고 한다. 뭐. 탓할 수 없다. 내가 했으면 하루 걸렸을 테고 나 또한 욕설이 난무하다 결국 누구를 불렀을 테니.
그다음 날 일어나니 나의 온몸이 욱신거린다. DIY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한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