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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Apr 24. 2021

생애 첫 방송 출연, 심지어 라이브

그리고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신랑 화장했다

지난주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내가 모 방송국의 유튜브 프로에 나갈 생각이 있는지. 심지어 생방. 라이브. 실시간.


난 목이 건조해짐과 동시에 식은땀이 흐른다.


일단 하루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난 40년 넘게 살면서 방송에 나가본 적은 없다. 아니, 인터뷰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여기 새 조직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몇십 년 전, 초등학교 반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는데 난 극구 거절했던 사람이다. 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싫었다. 세월이 흘러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같은 조직 사람들 앞에서 강연이었지, 익명의 다수 앞에서 말할 기회가 없거나 기회를 안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난 대학생 때 길거리 인터뷰하자고 하는 걸 도망갔었다. 인터뷰 질문도 별거 아니었던 것 같다. 개강 후 느낌이었던가...




난 이미 합격 통지를 받고 외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는 귀띔을 받았었다. 지금 맡은 일의 비중에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그래서 입사 후 난 전화 인터뷰(말을 너무 빨리 해서 폭망)와 영상 인터뷰(나름 잘한 거 같은데 방송 안 나감)를 했지만... 유튜브 생방??? 이건 차원이 다르다.


NGO에게 방송 출연은 중요하다.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알리는 방법도 있지만, 외부 매체를 통해 알리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걸 생각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나가는 게 맞다.


하지만 섭외 들어온 방송의 특징은 MC들이 서로 축구공 패스하듯이 티키타카 한다. 게스트는 그걸 잘 따라가야 한다. 그것도 라이브로.


한편, 중년에 인생 새로 시작했는데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잡고 나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라이브 방송 나갈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내는 1000프로 지지. 딸은 부럽다고 한다. 본인도 나가고 싶다고 한다.




다음날, 난 출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전 질문을 받았다. 질문은 최소 10개 이상. 대부분은 입사 후 봤던 질문이지만 일부는 답변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답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답변의 무한반복 연습. 그래야 생방에서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올 것이 아닌가.


며칠간 답변을 수정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결전의 날 전날, 예행연습을 했다. 일단 답변은 머릿속에 잘 안착되었다.




생방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치즈 스트링 하나만 가볍게 먹고 나섰다. 중요한 날에는 가볍게 먹은 게 익숙하다.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다시 한번 봤다.


동료를 만나서 관계자를 만나서 올라갔다. 대기실에 가서 잠깐 둘러보니 방송사 아나운서 포스터가 있다. 하나도 모르겠네... 생각하고 있는데 분장실로 데려간다. 한분이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머리스타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잘해주세요” 하니 알아서 쓱싹쓱싹 10분 만에 분장이 끝난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아니다. 결혼식 메이크업까진 아니어도 오랜만에 분칠을 하니 매우 어색하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서 동료와 연습을 해본다. 술술 나온다. 근자감이 5그램 정도 생겼다.


드디어 호출이 왔다.




생방이라고 하길래 청중들이 있는 줄 알았더니 스텝과 MC들만 있다. 처음으로 스튜디오 안에 들어와서 MC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이제 무대로 올라갈 시간.


다행히 슬램덩크 강백호의 첫 데뷔전처럼 얼지는 않았다. 강백호가 얼어 있자, 서태웅이 강백호의 엉덩이를 걷어차셔 강백호는 정신을 차리고 시합에 임했다.


다만... MC들이 대본대로 진행을 안 하다 보니 난 대답하는데 급급했다. 긴장을 해서 웃는 표정이 잘 안 나왔다. 질문이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너무 깊다 보니 충분하게 대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숫자 위주로 이야기를 풀 다 보니 MC들이 계속해서 더 물어보는 듯하다.


라이브 분량이 끝나고도 40분 이상 더 녹화한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긴장이 되어서 몸이 굳은 상태에서 그대로 쭉 촬영이 이루어졌다.


촬영이 끝나자 MC들이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고 혹시 더 할 말이 있나 싶어 좀 더 쭈빗쭈빗 머물렀더니 더 이상 없다(의례적으로 하는 “나중에 밥이라도 먹자”라는 멘트도 없었다 - 내가 방송 생리를 몰라서 기대한 듯하다).


일어나니 왼쪽 골반이 아프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힘이 왼쪽 허리 쪽으로 갔나 보다. 겨땀이 아니라 몸땀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모니터링한 동료 한 명이 실시간 댓글을 캡처했다. 너무 진중하다고.


방전되어서 그런지 그날은 일을 더 하기가 어려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딸과 아들이 신났다. 이모님이랑 같이 내 첫 라이브를 보고 멋있다고, 신기하다고 한다. 아들은 나를 방송에서 보니 진짜 아빠 맞냐고 했다. 아들아, 아빠가 맞지. 엄청 긴장한 아빠...


오래간만에 소주를 반주로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유튜브 댓글을 봤더니 댓글에 욕설은 없지만 쓴소리들이 많다. 시청자들은 내가 첫 라이브인지 몰랐으니 그랬겠지.


이래서 사라들이 댓글을 안 보거나 댓글을 보려면 멘탈이 강해져야 하는구나 생각이 든다.


라이브 방송 한번 출연했으니 됐다. 이제 (아마도) 더 나갈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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