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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Jan 17. 2021

중년 신입에게 프로젝트 주방장 역할이 주어지다

후원자들 질의 답변하기 그리고 계획 짜고 실행하기... 응? 내가?

“hit the ground running”: 새로운 일에 즉시 뛰어들어 열심히 성공적으로 진행시키다


경력직이 새 조직으로 이직하게 되면 바로 업무에 투입되고 기존 조직원들은 이 경력직에게 결과를 바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경력직을 일반적으로 전 회사보다 더 높은 연봉을 주고 뽑는 것이기도 하다. 경력직 본인도 자신이 그동안 쌓은 경력을 활용하여 새 조직에서 못해도 최소 평타는 친다. 즉, 경력자는 hit the ground running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경력직이 아니다. 난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신입이다. 나에겐 3가지의 큰 변화가 왔다:


1. 조직의 완전한 변화: 사기업에서 NGO

2. 업무의 완전한 변화: 외국변호사에서 활동가

3. 관련 경력의 완전한 변화: 10년 이상에서 0년


면접 때부터 내가 맡은 역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마음의 준비고 현실은 또 다르다.


나에겐 “hit the ground flying”이라고 표현을 바꿔야 할 듯.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는데 나는 단순히 뛰는 걸로는 부족하고 날아다녀야 한다.


여기 오자마자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어봤더니...

관련 배경 지식 폭풍 흡입 + 활동가 업무 순식간에 파악 + 관련 업무 회의 참석 + 오리엔테이션(사전 교육) 참석 + 다른 부서들 요청에 대한 확인 + 맡은 활동과 관련된 계획 짜고 실행하기


마지막 두 개가 가장 곤혹(?)스럽다.


1) 다른 부서들 요청에 대한 확인: 입사 후 1주일이 지나자 나의 존재가 조직 내에 제대로 알려진 것 같다. 안 그래도 작은 조직이어서 빠르게 소문이 퍼졌겠지만. 이메일이 들어와 있다. 후원자가 질문을 했는데 내가 맡은 분야라 담당자가 나에게 전달했다. 응? 이거 난 아직도 공부 중인데...? 과거에는 업무를 요청한 사람에게 전화나 회의를 통해 질문의 요지를 물어보거나 머릿속에 이미 대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었으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새로운 분야에 새로운 업무다 보니, 난 다른 분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봤더니 기존 질의응답 자료를 참고해서 회신하라고 하신다. 오케이. 휴...


이메일을 작성해서 보냈더니 다음날 바로 또 다른 후원자의 질문이 들어온다. 이 후원자는 자신이 속한 회사에 변화를 주고 싶어 하는데 상부에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한데 그런 거 없냐고 물어본다. 매우 훌륭한 후원자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에 30프로만 있어도 사회가 더 좋아질 것 같다. 관련 자료를 반나절 동안 찾아봐도 그런 자료가 인터넷에 없다. 다른 분들에게 물어봐도 결과는 같다. 난 결국 최대한 유사한 자료를 찾아서 답변을 준비했다. 오케이. 휴...


2) 맡은 활동과 관련된 계획 짜고 실행하기: 난 기존에 계신 분들과 회의를 할 때 나를 볼 때마다 그분들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진다. “얼른 프로젝트 시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넵”과 “알겠습니다”의 남발. 그러고 난 퇴사한 전임자의 자료를 찾아본다.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나가셨다. 어...? 내가 짜야한다... 일단 생각나는 아이디어들을 떠올려 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리조리 넣고 빼보니 이는 마치 내가 그동안 배달 음식을 사다가 먹다가(즉, 한정된 역할) 직접 재료를 고르고 사다가 요리하는 것과 같다(즉,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모든 게 다 가능하다).


그동안 나는 영문 계약서 검토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처리하는 수동적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 다른 부서들과 협의 및 추진해야 하는 능동적 위치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부서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외부 사람들 만나는 것이 마치 식자재 고르고 다른 사람들과 메뉴 조율하고 요리하는 것이 주방장과도 비슷하다.


나에게 이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은 흥미롭고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리를 안 해본 나에겐 칼질하다가 손을 베거나 요리를 태우는 등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최소화하고 맛깔스러운 요리를 내놔야 한다.


난 아메리칸 셰프(2014년)가 아니라 NGO 셰프다...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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