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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Jul 20. 2021

대물림된 잔소리: 할아버지, 아들과 손녀

아들(아빠)이 잔소리를 끊어야 딸이 변한다

우리 가족 3대 - 할아버지, 아들, 손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몇 자 적어보았다.



나의 아버지는 과거 대기업에서 성공한 임원이셨다. 상황 판단이 빠르셔서 상사가 원하는 것을 바로 캐치하셨다. 그리고 추진력이 뛰어나서 회사 생활을 매우 잘하셨다. 지금도 개인 사업을 왕성하게 하시고 계신다.


아버지 성격이 급하시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 보니 하루에도 전화를 몇 번씩 하시고 아들에게 맡긴 일 처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일을 처리하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똑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신다.


아버지는 분명 자식을 위한 사랑,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하시고 하고, 그동안 아들은 그게 아버지의 자식 사랑과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을 하고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들도 흰머리가 나고 가족을 꾸렸는데도 아버지는 계속해서 아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신다. 그리고 그것도 50을 바라보는 아들이 바로 안 할 경우 직접 처리하신다.


아들이 난감한 부분은 이제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니 답답하다.




성격이 급하건 똑같지만 상황 판단력이 상대적으로 덜 한 아들은 퇴근하면 아빠가 되어서 딸이나 아들에게 똑같은 소리를 다양하게 변주해서 반복한다. 손 씻어라, 자기 전에 쉬해라… 그러고 바로 안 하면 혼낸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아빠의 해결책을 제공해준다. 아이들은 본인들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데 성격이 급한 아빠는 울음을 참기만 하라니… 아이들은 아빠한테서는 힐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들과 딸은 정작 중요한 것에서는 (아이들에 한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엄마를 더 찾는다.




딸은 할아버지와 아빠의 급한 성격을 똑 닮았다. 그리고 아빠보다는 머리 회전이 빠르다. 오히려 할아버지에 더 가깝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이제 초등학생 딸의 생각의 흐름을 모르겠다고 할 때가 있다. 아직 난 딸이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겠지만 나도 길어야 5년이다. 5년 후면 딸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을 것 같다.


딸은 둘째인 남동생에게 아빠처럼 잔소리를 몰아칠 때가 있다. 누나가 동생을 혼낼 때 보면 내가 아이들 혼내는 표정과 말투가 똑 닮았다. 그리고 딸은 머리 회전이 빠르다 보니 어린 동생이 하는 행동이 성에 안 찬다. 한 숨을 푹푹 쉬고 인상 쓰면서 대신해준다. 딸은 아빠의 미니미다.




결국에는 할아버지, 아들, 손녀 모두가 머리 회전이 빠르다 보니 상황 판단을 즉각적으로 하게 되며 주변에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성격이 급하다 보니 성에 차지 않아 직접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상대는 잔소리를 듣고 기분이 상하게 되고, 대신 해줘도 고마운 마음이 덜 하게 된다.


가족 한 분이 마음을 굳게 먹으면 잔소리를 안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40년 넘게 살아보니 이건 야구 선수에게 정신력만 강조하는 꼴이다. 오늘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 탓은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밤새 스윙 연습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다음 경기에서 그 선수는 반짝 4타수 2안타를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무리한 훈련으로 부상을 입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잔소리를 정신력으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잔소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고, 내 뜻이 관철될 때까지 하게 된다. 일단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산 위에서 공을 굴렸는데 무엇에 부딪히지 않는 한 멈출 수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아버지가 잔소리하실 때 왜 그러시는지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간섭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딸도 마찬가지이다. 아빠의 잔소리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간섭 받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뻔한 레퍼토리이지만 아버지한테나 딸한테 변화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잔소리를 줄여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딸이 바뀔 수 있다.


내가 여유를 갖고 내 기준에 성이 안 차도 딸이 하고 싶을 때 알아서 하게 놔두어야 딸이 변할 수 있다. 머리로는 백번 천번 이해가 간다. 실행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요새 날씨도 더운데 내가 잔소리를 안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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