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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Aug 13. 2021

혹(약) 떼러 갔다가 혹(약)이 늘었다

일 년 만에 간 병원에서 콜레스테롤 약을 추가로 처방받다

얼마 전 나는 1년 만에 대학병원을 다시 찾았다. 3년 전에 크게 아프고 매년 한 번씩 병원을 가서 1년 치 약을 타 왔었다.


약이라는 했지만 사실 오마론(오메가-3 건강기능식품)과 아로나민(비타민C)이었다. 의사가 처방한 것과 달리 후자는 아예 안 먹고 전자만 하루에 한 알 먹었다. 내 건강도 회복되었고 (운동도 하고 있고) 올해는 약을 완전히 끊을 생각에 그렇게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 진료가 완전히 종결이 된 후 2년 이후에나 실비보험을 가입할 수 있어서 내심 기대가 컸다. 나는 웬만하면 모든 걸 대비하는데, 크게 한 가지 빠트린 게 바로 실비 보험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가벼운 감기나 잔병만 있어와서 실비 보험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전전 회사에서는 단체 실비보험이 있다 보니 더더욱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전 회사에서는 상해보험만 가입해주다가 질병 실비보험이 추가된 그 해 내가 아팠으니 천재일우였다. 안 그랬으면 내가 부담할 병원비가 꽤 되었을 것이다.


전 직장 퇴사 후 실비를 가입하려고 문의해보니, 입원 기록이 남아있어서 가입이 안 되었다. 유병자 실손보험이 있는데 혜택은 제한적이고 보험료만 비쌌다.


하지만 모든 게 준비됐다. 최근에 나의 운동량이 줄었지만 일 년 넘게 주 4-5회 열심히 뒷산을 탔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었다. 진료 당일 피검사를 받아야 했다.




토요일. 결전의 날 나는 일찍 일어나서 거울을 쳐다보고 주문을 외웠다. TV인생극장에서 “그래! 결심했어!”가 아니라 “약! 이제 그만!”


피검사를 받고 우아하게 커피와 베이글을 먹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오늘은 의사가 평소보다 더 빨리 진료를 한다. 보통 인 당 10초면 끝나는데 5초 만에 끝난다. 근데 매번 갈 때마다 40분씩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더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다.


의사: “요즘 어떻세요?”


나:  (군기 바짝 들은 훈련병처럼 우렁차게)

“네! 좋습니다!!”


의사: “다른 건 다 좋은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네요”


나: (??)


의사: (속삭이듯이) “158…” [콜레스테롤 수치를 말한 듯하다]


나: (잘 못 알아듣고) “네?”


의사: (이제 진료 끝났으니 나가라는 표정을 짓는다) “약이 추가될 거예요”


나: (속삭이듯이) 네…


난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도하의 비극의 주인공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2-1로 이라크를 앞서다가 30초를 못 버티고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첫 월드컵 본선 진출 좌절, 그리고 대한민국은 극적으로 진출(일본보다 골득실차에 앞섰다). 허망한 표정으로 병원을 나왔다.




진료비 6만원, 약값 34만원. 총 40만원. 양손에 약 한 봉지씩 들고 터벅터벅 지하철을 탔다. 택시 타고 기본 좋게 금의환향하려고 했는데…


집에 오니 딸이 약 끊었냐고 묻는다. 난 크리스마스 캐럴의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처럼 조용히 손가락으로 식탁에 올려진 약봉지를 가리켰다. 딸은 엄마에게도 눈을 가리라하고 약봉지 앞에서 엄마 눈을 떠보라고 한다. 아내의 눈이 평소보다 더 커진다. 




아내는 즉각 나의 최근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해보라고 한다. 작년까지의 종합검진 기록을 보니, 재작년부터 꾸준히 내 수치가 올라가고 있었다. 술도 거의 안 마시는데 난 억울하다. 그나마 유전이라는 핑곗거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내 남동생은 건강하다고 카톡이 왔다.


돌이켜보니 검진 받을때마다 난 경계성 비만 판정을 받았다. 피검사는 진실을 못 숨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료 3개월전부터 채소만 먹을걸... 뒤늦은 후회다.


다음날부터 난 운동량을 늘이고 아침 식사에는 견과류가 올라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도 녹차를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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