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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Jan 12. 2022

아내의 시점에서 글을 쓰다 - 궁상맞은 척하는 남편

그냥 가만히 있으면 멋진 남자일 텐데 왜 그럴까

명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 코난 도일의 대부분의 소설의 시점은 셜록 홈스의 인도에서 군 복무한 따뜻한 남자이자 조수인 존 왓슨으로 설정했지만 몇 편은 똑똑하면서 차가운 런던 남자 셜록 홈스의 시점에서 썼었습니다. 후자의 시점은 생각보다는 재미는 없지만...


10년간의 부부생활을 해보니 아내의 뇌 구조의 98프로를 알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2프로는 평생 모르겠죠...


최근에 전세 기간이 끝나가서 전세갱신청구권을 행사했지만 집주인이 수차례 결혼할 아들이 들어오다는 이유를 대고 거절하면서 저흰 이사를 준비하면서 일어난 일을 아내의 시점에서 적어봤습니다.


참고로 집주인이 변호사를 통해 보낸 내용증명에는 아들이 들어온다고 적혀있지만 이사 들어오기 전 집을 뜯어고친다고 집을 보러 온 건 딸입니다. 이 자녀는 자웅동체인가요? 또 하나, 전세계약서를 안 보고 작성했는지 계약 기간 날짜가 틀리더라고요. 다른 세입자에게 보낼 내용증명을 잘못 보냈을까요?


재작년 겨울에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을 때는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전쟁에서 진 상황이 되었네요. 안 나가고 버티기 할까 하다가 결국 아내 만류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남편은 변함없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 구독 후 볼 게 없다면서도 보고 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당근마켓 앱을 열었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도 싶은데 드러누워 있으니…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누워서 핸드폰 보는데도 목이 잘 돌아가는 게… 핸드폰 보다가 유일하게 이야기하는 게 대선 업데이트다. 요새는 나나 애들보다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이때만 남편 눈이 반짝반짝한다.


나는 당근마켓에서 나름 매너 온도가 높다. 몇 년 동안 물건을 팔아보니 요령도 생겨서 올리는 물건을 대체적으로 잘 판다. 얼마 전 첫째 둘째가 사용한 어린이 원목 의자를 올렸더니 몇십 명이 문의를 해서 어리둥절했는데 나중에 동생에게 들어보니 해외 공장이 멈춰서 부르는 게 가격이라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올려서 애들 학원비나 보태볼걸… 이참에 남편이 사놓고 몇 년째 안 쓰는 샤* 향수도 올려봐야겠다.


처음에 내가 당근마켓에다 물건을 팔 때 남편은 부정적이었다. 아예 자신이 입던 옷까지 싹 팔아버리지 그러냐고 구박했다. 하지만 난 굴하지 않고 꿋꿋이 남편이 안 입는 옷 정리를 해서 남편 옷장이 50프로 이상 줄었다.


곧 이사 갈 집은 방 하나가 줄어든다. 이번 기회에 애들 책들, 잡동사니와 가구들을 팔거나 무료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잘 팔다 보니 내가 가끔 영업직을 했으면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남편이 일어나더니 멍한 표정으로 극중주의 같은 걸 하겠다고 한다. 갑자기 뭔 소리인가 속으로 생각하지만 난 표정 변화 없이 듣는 척한다.


남편: 안철수가 몇 년 전에 극중주의하겠다고 했잖아? 애초 극중도라는게 없지만 (주절주절 이하 생략) 암튼… (나: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하려는군…) 앞으로 최소 1년간 우리도 극절약을 해야 해. 당신과 나는 서로 돌아가면서 저녁 한 끼를 건너뜁시다.


속으로 한 숨이 나오지만 난 내색을 안 한다. 전셋값이 올라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아 앞으로 일 년 정도는 자금 압박이 있겠지만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닌데…


결혼 초에는  콩깍지가 씌어져 진진하게  들어줬지만 이제는 흘려듣는다. 가끔씩 남편이 궁상맞은 척을    그럴까 한다. 가만히 있으면 결혼  내가 원했던 멋진 남편일 텐데


그 와중에 남편이 궁상맞은 소리를 추가한다. 앞으로 카* 커피 마시고 남은 거에 물을 부어서 마셔야겠다고.


하아… 난 오늘도 열심히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린다. 내 남편도 올려볼까.




이 글과 비슷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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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예전에도 나가라고 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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