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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Apr 11. 2022

직장에서 과거의 초까칠한 나와 마주치다

나의 젊은 버전의 도플갱어를 통해 깨달음을 얻다

“NGO에 가면 당신보다 더 까칠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어”


재작년 말, 현 직장에서 합격 통지를 받고 기쁨을 만끽하는데 아내가 초를 친다(고 당시 나는 생각했다).


결혼 후 내가 회사 내 저 직원은 이래서 빌런, 이 직원은 저래서 빌런, 나 빼고 모두가 다 빌런이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무수히 많이 했는데 아내는 이번 직장에는 나보다 더 까칠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가  그러냐 묻자, NGO모인 사람들은 기존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연봉이 줄어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 입사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까칠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 아내의 뇌피셜이다(뇌피셜: 자신만이 인정하는 의견이나 입장). 내가 여기에 들어와 보니 다양한 곳에서 일하다가 들어온 동료들이 뚜렷한 목적을 위해 들어온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래서 나와 파장이 맞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일지도.


나는 기업에서 사내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다른 부서 사람들이 계약을 빨리 해달라고 보채거나 제대로 되지 않은 계약서를 검토해달라고 하면 폭풍 지적을 하고 거절을 하고 싶었으나… 결국에는 검토를 해줬다. 그러니 난 해주고도 욕먹은 1인이었다. 이건 딸에게도 유전이 되어서 딸이 동생을 구박하고 결국에는 동생 말을 들어준다. 이런 건 아빠 안 닮아도 되는데…


. . . 여기에 입사해보니 내가  “다른 부서 사람 되어 있었다. , 내가 프로젝트를 담당하다 보니 내가 다른 팀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입장이  것이다. 여기 굽신. 저기 굽신. 입장이 바뀌었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나는 천지개벽됐다. 아내가 경천동지를 느낄만하다.


이런 나의 입장 바뀐 상황을 아내에게 설명하니 아내는 침을 튀기면서 드디어 역지사지네, 주객전도네라고 한다(다른 표현을 썼지만 대략 이런 느낌). 10년간 남에게 까칠하게 굴던 남편이 반대 입장이 되어서 굽신굽신 하면서 남들의 까칠함을 받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쌤통…?


몇 차례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난 나름대로 적응을 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일정이나 방식대로 안 되는 건 무리해서 내가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채팅으로 누가 나한테 말을 건다. 잘 모르던 동료인데 얼마 전 그 사람이 속한 팀에 내가 예전에 요청한 것과 관련하여 나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을 갑자기 주르륵 쏟아낸다.


????…!!!!!


기시감이 든다. 내가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아… 여기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구나… 아니, 나보다 좀 더 젊고 나보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도플갱어 3.0.


내가 까칠 스케일 10점 만점에서 9점이라면 이 사람은 11점이다. 모두가 까칠하다고 전제를 하면,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다.


40년 넘는 인생에서 난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그다지 신경을 안 썼지만 내가 내 자신을 직접 겪어보니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이해가 갔다.


뭐…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사람이 바뀌진 않겠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부딪히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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