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만 치료하는 외과인지 내가 알리가 없지
휴가 기간에 혼자만의 여행은 안 가고… 혼자만의 제초를 하러 다니고 있다.
제초를 외부에 맡기면 한 번에 20-30만원이 나가다 보니 낫을 구입해서 내가 직접 하면 비용도 절감하고 시간도 많을 때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낫 체크. 고글 체크. 토시 체크. 수건 체크. 등산화 체크. 물 2병 체크. (저번에 아내가 물병을 가져가는 바람에 다른 곳에서 제초할 때 고생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꽤 많은 덩굴들이 펜스에 달라붙어있다. 덩굴들은 약해서 몇 번 당기면 제거가 쉽지만 바깥쪽에서 들어온 나무줄기들은 낫으로도 쉽게 잘리지 않는다.
작업이 끝나길 즈음 갑자기 왼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벌에 쏘였다. 하지만 휴가 내고 내려온 김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대충 마무리를 짓고 주섬주섬 장비와 도구를 챙겨서 차로 갔다.
손가락 마디가 쑤시는 것은 벌의 독침 때문이 아니라 낫질 때문이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독침 때문에 귀도 멍한 것 같다. 여기서 쓰러지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제초 작업은 두 명이서 하나보다). 아내가 전기차 테슬라 앱으로 내(자동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아내가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2시간은 넘게 걸린다. 어떻게든 근처 병원까지는 나 혼자 가야 한다.
일단 시내로 가기 위해 지도를 찾아보니 현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집에서는 멀어지지만 병원이 더 가까이 있다. 올라가면 5km를 가야 한다. 올라가자. 쓰러지더라도 집 근처까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OO의료원을 일단 내비에 찍었다. 운전하면서 눈이 뻑뻑한 게 독침 때문이 아닌가 계속 걱정이 되었다.
도착했는데 의료원이 아니라 종합병원 같다. 들어가 보니 이것저것 다 보는 종합병원이다. 번호표 뽑아 앉아서 두리번거리니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다. 그리고 피부과 담당의는 진료를 오늘 보지 않는다고 한다. 기다리다가 독이 퍼져 쓰러질 것 같다.
급히 근처 외과를 검색해봤다. “OO중앙외과”. 다행히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특이하게 주변에 모텔이 많다. 도착해서 들어가는데 정문에 “대장항문 클리닉”이라고 쓰여있다. 그래도 명색이 외과니 일단 들어가 봤다.
앉아있는 간호사 두 분에게 물어본다. “벌 쏘였는데 진료 보나요?”
4개의 눈이 깜빡깜빡한다. 한 분이 “여긴 항문 전문의예요. 치질 수술 등…”
내가 눈을 깜빡깜빡할 차례. 절박한 마음에 물어보니 좀 더 시내 중심으로 가보라고 한다.
결국 세 번째 병원인 치질 전문이 아닌 외과에 가서 침을 무사히 뽑았다.
<벌에 쏘이고 받은 교훈>
1. 외과라고 다 같은 외과가 아니다
2. 제초를 혼자 하면 위험할 수 있다.
3. 돈이 들어도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서 맡기자
제초한 후 사우나하려고 헤맨 이야기:
https://brunch.co.kr/@jitae20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