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에 와서 아이 데려가는 줄 알았더니… 4시간 반 더 있다 가다
주말에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순위로 매긴다면, 1 유튜브 보기, 2. 친구 초대해서 집에서 놀기, 3. 친구 집 가서 놀기일 것이다.
2번의 경우, 부모 입장에서도 좋다. 유튜브 대신 아이들은 아이들 친구와 집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놀고 부모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낮잠을 잘 수 있다.
아이가 둘인 경우 부모가 조금 더 노력을 하면 위와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각자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아이들이 각자 친구들과 놀다가 넷이 잠깐 놀다가 또 각자의 친구들과 놀다 보면 얼추 시간이 다 되어서 해당 아이의 부모가 적당한 시간에 픽업하러 온다 (또는 데려다준다). 점심 먹고 저녁 전에 만나서 놀면 3-4시간이니 충분히 놀게 된다. 물론 아이 기준으로는 부족하겠지만. 간혹 아이만 저녁까지 먹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 친구 부모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일은 없다. 심지어 집에 아빠까지 있으면 더더욱 그런 일이 없다. 정말 친하면 그럴 수 있지만 집에 첫 방문한 경우에는 그럴 일은 없다.
이는 암묵적인 국룰이다(국룰이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나 행위들). 아이 데리러 와서 잠깐 어른들 간 이야기는 하겠지만, 기다리는 아빠 또는 다른 자녀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만들어 먹거나 시켜먹거나 외식을 하거나 굶거나, 알아서 한다. 그리고 초대받은 집에는 온 가족이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돌아간다.
하지만 이 날 우리 부부는 깨달았다. 국룰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딸이 언제부터 이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 했다. 엄마들끼리 번호 교환하고 날을 잡았다. 누나만 친구가 오면 동생이 서운할 테니 동생 친구도 초대.
오후 4시까진 순조롭게 흘러갔다. 딸의 친구 엄마가 4시경에 온다고 했다. 이때 와서 잠깐 있다가 가겠지 생각하는 건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듯하다. 아내가 아이들 각자 친구끼리 놀고 있는 것을 보는 동안 나는 방에 들어가서 시에스타를 즐겼다.
4시쯤 일어나서 나가보니 딸아이 친구의 엄마가 앉아있다. 내가 먼저 인사. 아내는 나보고 아들 친구를 데려다주라고 한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밖에서 놀기로 했다가 결국 차 안에서 게임을 30여분 했다. 아들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니 5시경. 아직 현관에 신발이 있다. 난 속으로 아직 안 갔네?
아내는 다시 아들과 나를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놀고 저녁 먹을 장을 보고 집에 오니 6시경. 아직 현관에 신발이 있다. 난 속으로 아직도 안 갔네??
이제 슬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깨달았다. 난 딸 친구 엄마는 왜 집에 안 가나 궁금해졌다. 일단 아들과 샤워를 했다. 보통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알아서 나가는 게 아닌가. 심지어 샤워를 한다는데. 그러나 이 분은 꿈쩍없으시다. 결국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내의 부탁으로 난 상추를 씻기 시작했다. 딸 친구 엄마는 집에 가서 가족과 먹는다고 한 거 같은데 일어나질 않는다.
7시경. 난 이제 속으로 이 사람 뭐지?? 보다 못해 빈말로 난 그 엄마에게 마지못해 먹고 가시죠 한다. 아내도 옆에서 억지로 거들었다. 후에 우리 부부가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난 아내가 먹고 가시죠를 듣고 내가 거들었다고 생각했고 아내는 반대로 내가 먼저 했다고 한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분은 우리 집 식탁에서 복지부동.
7시 반. 결국 이 분은 우리 집에서 먹고 간다고 한다. 딸이 더 놀겠다고 해서 못 간다는 식으로 말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나나 아내는 대응할 틈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식사 준비하는 동안 그 엄마는 내 아들 옆에 가서 넷플릭스를 같이 본다. 난 속으로 이건 프로야.
딸 친구들에게 저녁에 쇠고기를 내놓은 건 처음이 아니지만 스스로 눌러앉은 사람까지 우리가 챙겨준 것은 처음이다.
8시 반. 우리 부부는 눈빛 교환도 필요 없다.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이 분은 우리 집에 밤까지 있을 기세다. 일단 O마트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득템이고 우리 부부에게는 탈출구다. 지금까지 저녁 설거지를 미룬 적이 없지만 이번만은 미룬 채 대충 치우고 서둘러 나갔다.
10시경. 아내에게 그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응??? 우린 초대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문자에는 자기 집에 놀러 오란 말은 없다. 응??! 빈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래간만에 슈퍼 빌런을 만났다. 아내 친구들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간혹 있다고 한다. 결국은 단호하게 가족이 저녁 먹어야 하니 나가주시죠 같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딸의 그 친구는 언제는 환영이다. 그분은 이제 픽업만 하도록 할 것이다.
<오늘의 교훈>
1. 대부분의 부모는 예의가 있다. 문 앞에서 데려가거나 잠깐 들어와서 이야기하다 가지, 저녁까지 알아서 먹고 가지 않는다.
2. 하지만 아주 아주 가끔 이상한 부모가 있다. 확실하게 말해놓지 않으면 눌러앉아 저녁까지 먹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