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기사, 공문원 고생 덕분에 자가격리 14일 버틴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은 포틀랜드에서 차를 빌려서 한국 귀환 난민 행렬에 합류했다. 잠깐 마지막으로 오래곤 해변을 즐기려다가 모래바람으로 단 5분만 보고(굿바이...) 시애틀로 올라갔다.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어차피 미국은 나갈 땐 전광석화로 승객들을 내보내니 여기서는 문제없이 통과. 그리고 비행기 탑승 전에 한 번만 발열 체크. (렌터카 기름을 넣는 걸 깜빡하고 차를 돌려줬더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기름값 명목으로 20만원 정도 추가 청구. 내가 글로벌 호갱이란 걸 재인증...)
Prequel(비행기 안): 이렇게 승객이 없던 비행기는 안 타본 거 같다. 비행 중 계속 마스크를 썼지만 생각보다 자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애들도 잘 버티고. 승무원들이 고생이다. 누가 탈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계속 일해야 하니.
도착: 나는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쌀 한 포대 무게가 나가는 잠든 아들을 안고 입국했다. 헉헉... 이번엔 군인들이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할 차례다. 이들은 우리가 작성한 서류 확인, 체온 체크, 자가격리 앱 설치 확인(자가진단 앱 보여줬더니 아니란다. 누가 잘못된 정보를 줘서...) 단계별로 남어가는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역시 우리나라의 값싼 노동력의 핵심은 군인이다. 이들의 처우가 더 좋아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왜 이리 엇비슷한 서류 작성이 많은지. 이것만 줄여도 투입된 공무원 수는 줄일 수 있을 텐데. 짐을 찾고 나가니 다시 방진복 입은 분들이 오렌지 스티커를 우리 어깨에 붙인다. 딱히 필요는 없는데...
이동: 콜밴 아저씨가 마스크를 쓰고 우릴 집으로 데려준다. 내가 기대한 방진복 차림이 아닌가 보다. 이야기를 들으니 코로나19 시대에 학원 차량이 줄어서 교통 상황이 낫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가 코로나19가 걸리면 정부에서 일정 부분 보조금이 나온다고 한다. (오 필승 코리아..!) 집에 도착하니 깎아서 10만원이라고 한다. 음??? 바로 집으로 가면 8.5만원 아니었나(보건소 들려서 가면 10) 어쨌든 고생하시니 모른척하고 만원 더 드렸다.
집 첫날: 대충 먹고 일단 자다. 집안이 폭탄 맞은 거처럼 엉망이다. 일 년 만에 돌아오니 낯설다. 미제 수도꼭지가 크다 보니 집 수도꼭지가 작아 보인다. 반면 밥통은 엄청 커 보인다. 미국에서는 3인용을 써서 그런지...
둘째 날: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우린 보건소로 갔다. 난 혹시 몰라서 여권과 어제 공항에서 받은 서류를 잔뜩 들고 갔는데 다 필요 없고 여기서도 또 서류 작성을 한다. 확진자일지 모르는 사람들 상대하는 공무원들도 고생이 많다. 이제 드디어 샘플 채취할 시간. 먼저 하겠다는 자진한 딸이 검사받고 바로 운다. 아내는 생각보다 태연. 난 목구멍과 콧구멍에 이물질이 들어가니 기침이 나온다(코로나19 환자로 의심받는 게 아닐까 마음속으로 괜한 걱정을 해본다). 아들은 마지막. 역시 운다. 그나마 우리가 외출한 거에 대해 감사하다. 저녁에는 야근하는 공무원이 우리 집에 격리 용품을 놓고 간다. 손소독제 4개, 일회용 마스크, 무시무시한 살균 스프레이 4개, 체온계 4개, 시뻘건 대형 쓰레기봉투, 마음안정책... 난 일인분 카레나 자장을 기대했는데. 쩝... 앞서서 전화로 아내가 대충 다 있어서 이런 물품들 필요 없으니 필요한 분 주셔도 된다고 하는데도 공무원은 다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 받으라는게 살짝 갑갑스럽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지급하는 게 행정적으로 효율적이고, 우리 때문에 늦게까지 고생하시니 그냥 넘어간다.
셋째 날: 딸에게 미션을 주다. 가족 온도 체크를 하루에 두 번씩 하라고 했다. 설치한 앱이 이상하다. 애들 방에서 앱을 키니 공무원이 전화 와서 집 이탈하지 말라고 한다. 아.. 억울해. 하지만 고생하시니 넘어간다. 아내는 몰래 나가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가 알려줬다. 탈출하면 아오지 탄광... 이 아니라 강원도 탄광에 입소하고 난 모른척하겠다고.
넷째 날: 집안에 쓰레기가 쌓여간다.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 시뻘건 봉투에 담기 시작하다.
아직도 10일이나 남았다. 해방되는 날 무얼 할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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