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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또 Oct 30. 2020

크리스마스의 악몽

베틀로에서 친해진 일본인 커플이 있었다. 히로와 마사! 

서로 언어는 달라도 일본 게임이랑 애니 덕후였던 나의 영어 이름이 티파였던 턱에 

히로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그걸 계기로 현재까지도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서로 다른 농장의 일을 구하면서 이사는 갔지만 차로 10분 거리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해, 무더운 여름날의 크리스마스. 히로와 마사로부터 식사자리에 초대받았다. 

김밥, 샐러드, 그리고 오코노미야키까지 진수성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창 수다를 떨며 맛있게 음식을 먹는 도중 희미하게 김밥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의 그 상차림


그것은 구더기였다!!


아보카도 소스 속에 수십 마리의 벌레들이 바쁘게도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황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알아버린 순간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이 하필 또 그 김밥이었는데 뱉고 내용물을 확인하면 졸도할까 봐 그냥 삼키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던 것 같다. 슬프게도 분명 나는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내 속으로 구더기를 추가시키고.. 조심스럽게 마사에게 손가락으로 김밥을 가리켰다.


' 난다 고레? '


서로 놀라며 순식 간의 난장판이 됐다. 이미 나와 다른 일행은 2,3개를 집어 먹은 상태였다. 

사람이 많이 놀라면 헛구역질도 안 나온다. 재빨리 근처 드럭스토어에 가서 가장 강력한 구충제를 사서 먹었고 혹시 모를 대비에 다른 구충제와 변비약까지 준비했다. 

히로와 마사는 아프게 되면 전부 책임지겠다며 미안하다고 거듭 말해주었다.


다행히 철도 씹어 먹을 나이었어서 그런지 내 속은 아무 일도 없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만 되면 떠오르는 일이랄까? 호주의 자연과 너무 자주

하나가 되는 거 같다..


히로와 마사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나가노에서 진짜 사과 농장을 하게 되었다. 

정말 워홀을 통해 본인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히로와 마사는 본인들이 직접 수확한 사과로 만든 사과칩까지 보내주기까지 했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이쁜 딸들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차근차근 본인들의 꿈을 이루고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이뤄가는 모습이 힐링 만화 같다. 

언젠가 나도 히로와 마사의 집에 놀러 가서 못다 한 수다를 떨고 직접 수확한 사과를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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