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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Mar 02. 2018

7. 유장한 두 물길이 하나가 되어

상견례는 난생처음이야 

몇 주를 밤잠을 못 이루고 긴장하였는지 모르겠다. 상견례 식사 장소에서 갑자기 캔슬을 하는 꿈, 음식이 형편없는 꿈, 내가 상견례 장소를 잘못 알아 혼자 엉뚱한 식당에 가는 꿈 등 아주 창의적인 방법으로 악몽을 꾸었다. 사실 내가 긴장할 건 아닌데, 여러모로 양가 부모님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한다는 자리가 막중한 책임으로 다가왔다. 

식사 장소 예약하는 것에 애먹었다. 나의 가장 모난 부분 중 하나인 "완벽주의"성향이 슬그머니 드러났다. 특히 가족들 중 특별히 식단관리를 해야 하는 분이 계셔 그 부분을 고려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었다. 처음 예약했던 식당은 불친절해서 싫고, 두 번째 예약했던 식당은 분위기가 너무 왁자지껄해 싫고, 결국 음식은 조금 부족하지만 분위기가 좋고 친절한 식당으로 정하게 되었다. 

또한 부모님들께 감사의 표현을 드리고 싶었다. 먼 걸음 해주신 예비 시부모님께 너무 감사했고, 그동안 아들 딸 잘 키워주셔서 그리고 이런 자리를 빛내주셔서 참 감사했다. 감사의 뜻으로 건강 곡물 쿠키와 마음을 담은 편지, 그리고 약소한 용돈을 준비했다.


나는 남자친구 부모님께, 남자친구는 우리 부모님께 드린 작은 쪽지 


상견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다. 평소 친구 같은 사돈에 대한 로망을 가진 엄마 아빠는 서로 편하게 대하자고 적막을 깨셨고, 성격이 온유한 시부모님도 그 제안에 선뜻 마음을 열고 대하셨다. 제발 자식 자랑하지 말라는 우리의 당부 덕에 본인 자식 자랑 대신 남의 자식 자랑으로 훈훈하게 상견례 시간을  채워갔다. 신기한 건 남자 친구 집의 배경과 우리 집이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그동안 살아왔던 배경, 신앙의 동기, 또 인생에 대한 자세 등이 참 많이 닮아 서로 신기했다. 

상견례 다음 날인 일요일도 양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예비 시부모님께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도 보여드리고, 힘께 교외에 있는 예쁜 카페도 구경했다. 이게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 글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시부모님을 생각했을 때 드는 마음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내오신 분들에게 마땅히 존경을 표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그 시간들이 이제는 온전히 보상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응원하는 마음. 어머님 아버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빠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듯 그 분들을 생각할떄도 같은 마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다. 바로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다.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거나, 오래 만난 인연에게는 이 시를 적어 선물하곤 한다. 그중 한 대목이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 마종기 <우화의 강> 


우리의 만남도 지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버벅거리지만, 이 두 집안의 만남은 유장한 물길로 섞여 수려한 강물이 될 것을 믿는다. 쉽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가뭄에도 장마에도 이대로 유구한 물길이 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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